이스타항공·LG트윈타워 해고자들 "농성장 지킬 것"
거리 나온 노동자들의 설날…"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작년 추석에도 그랬지만, 명절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고통스러운 날이 하루씩 늘어나는 거죠. 이 처지에 어디를 가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
605명 정리해고에 반발하며 지난해 9월부터 160일 넘게 국회 앞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박이삼(52)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 조종사지부장은 12일 "문득 외롭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1천680명이던 이스타항공 직원은 지난 한 해 권고사직·희망퇴직·정리해고로 550명만 남았다.

고용승계를 약속했던 회사는 나중에는 `고육지책'이라는 말로 해고를 정당화했다.

그런데도 매각은 난항을 겪는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난 속에 회사는 법원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노조는 순환휴직을 통한 고용 유지와 운항 재개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 지부장은 "영하 10도 아래인 날은 아무리 가스히터를 켜도 비닐 속에서 버티기가 힘들다"며 "찬 바닥에 양반다리로 하루 8∼10시간씩 앉아 있으니 고관절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거리 나온 노동자들의 설날…"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여의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30명도 58일째 농성 중이다.

LG그룹 빌딩 관리 계열사인 S&I코퍼레이션은 지난해를 끝으로 미화업체 지수아이앤씨와 용역 계약을 종료했다.

일자리를 잃은 청소노동자들은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왔다.

서관 32층과 34층에서 근무했다는 박소영(66)씨는 "청소 일 한다고, 여자라고, 나이 많다고 얕잡아보고 착취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벌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가장들"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노조 없는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LG 직원 수천명이 밥을 먹는 식당 바닥 왁스질, 층별 구강세척제 교체 등 계약 외 `공짜 일'도 했고 명절이면 참치캔이나 받으면 되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시작한 농성은 올해 1월 1일부터 더 험난해졌다.

LG트윈타워 측이 로비 난방을 끊고 용역 수십명을 동원해 식사 반입도 막기도 했다.

그래도 요즘 농성장 앞을 지나는 젊은 LG 직원 중에는 "우리는 여사님들 편"이라며 응원하거나 돈을 보내주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생활은 팍팍해졌지만, 새해에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뜻은 여전하다.

이스타항공 박 지부장은 "아들이 올해 초 복학해야 하는데 200만원 좀 넘는 등록금이 없었다"며 "다행히 소득분위 1분위가 돼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됐는데 잘된 일인지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는 "밀린 임금은 필요 없으니 원래 일자리로 돌아가겠다는 게 유일한 바람"이라며 "이런 요구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대통령은 노동자들 얼굴도 마주하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노동자 박씨는 "대한민국 4대 그룹이 자기 건물을 10년 넘게 쓸고 닦고 배설물을 치워준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바람은 딱 하나, 죽으나 사나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