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소법·검찰청법 대통령령, 원안 일부만 수정된 채 국무회의 통과
경찰 "부족한 부분 시행 과정에서 적극 보완"…검찰 "개혁 아닌 개악"
수사권개혁 시행령에 검경 모두 아쉬움…기관 갈등 일단 봉합
수사권 개혁을 위한 개정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관련 대통령령(시행령) 제정안이 원안 일부만 수정된 채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대해 경찰과 검찰 모두 아쉬움을 나타냈다.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의 올해 1월 국회 통과에 이어 시행령의 국무회의 통과로 오랜 세월 이어진 두 기관의 대립·갈등은 일단 외형상 봉합됐다.

경찰청은 이날 오후 입장문에서 "입법예고 기간 경찰은 물론 사회 각계에서 법리에 맞게 수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많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음에도 일부만 반영된 점은 무척 아쉽다"며 "내년 1월 시행을 위해서는 신속히 개혁 입법을 마무리해야 하는 만큼 결정을 존중하며, 대통령령이 차질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은 향후 시행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보완하는 한편, 대통령령이 국민 권리·편익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수사권 개혁을 위한 개정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대통령령이 통과됐다.

법무부는 지난달 초 이 대통령령을 입법 예고했다.

대통령령은 검찰 권한을 분산하는 내용을 골자로 개정된 형소법, 검찰청법과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

경찰은 대통령령이 법무부 단독 소관인 점 등을 문제 삼아 반발해왔다.

경찰은 입법 예고 기간(8월 7일∼9월 16일)에 대통령령을 수정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벌였지만, 성과가 없었다.

대통령령은 차관회의도 원안 거의 그대로 통과했지만, 이후 여당이 경찰 안팎의 반발을 소폭 수용하면서 최고 정책심의기관인 국무회의에서 일부 수정됐다.

수사권개혁 시행령에 검경 모두 아쉬움…기관 갈등 일단 봉합
일선 경찰에서는 국무회의를 통과한 내용이 여전히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A 경감은 "법무부가 대통령령을 입맛대로 개정할 소지는 차단해 다행"이라면서도 "대통령령이 검찰 개혁을 위해 개정된 형소법, 검찰청법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직 경찰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게시판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을 둘러싼 논란, 북한군의 우리 공무원 사살 등 굵직한 이슈가 끊임없이 터져 나와 경찰의 대통령령 수정 목소리가 묻힌 데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하는 글도 올라왔다.

검찰 안팎에서는 성토가 쏟아졌다.

지방의 한 간부급 검사는 "법률에 위반되는 대통령령을 거의 그대로 통과시킨 건 검찰 개혁이 아닌 검찰 '개악'"이라며 "권한 분점은 궁극적으로 수사를 잘하고 폐해를 막으라고 하는 건데 이번 제정안으로는 오히려 국민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검사는 특히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다 범죄 혐의가 검찰청법에 규정된 6대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사건을 경찰에 넘기게 한 조항을 대표적 문제 조항으로 꼽았다.

예를 들어 7억원 사기 혐의로 고소장이 들어와 수사하다가 5억원 미만의 액수만 입증되면 제정안에 따라 사건을 경찰에 넘겨야 하는데, 이 경우 사건 당사자들만 이중 수사 등의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다.

이 검사는 "제정안대로 사건 처리가 이뤄지면 국민이 얼마나 불편해지는지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수사권 조정"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학계에서는 비대해진 경찰권을 통제할 장치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을 맡은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경찰에 1차적 수사 종결권을 줬으면 그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의 제정안에는 그런 장치들이 미흡하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입법예고기간에 학회가 제출한 의견이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꼬집었다.

그는 "형사소송법을 오래 연구한 학자들이 의견을 냈으면 왜 이런 의견이 나왔는지 고민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의견 청취라는 형식만 갖추는 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