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제기동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추석 대목을 앞둔 상점과 창고 등 20개 시설이 소실됐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21일 오전 서울 제기동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추석 대목을 앞둔 상점과 창고 등 20개 시설이 소실됐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대목이라 두 배 가까이 들여놨는데 다 탔어. 추석까지 장사는 공쳤지.”

21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만난 과일가게 사장 김두용 씨는 시장 앞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이 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했다는 김씨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사과, 배, 포도 등을 1500만원어치씩 들여놨다. 김씨는 “과일은 물론 집기류까지 다 타서 최소 5000만원 이상 손해를 봤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날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는 오전 4시32분께 화재가 발생해 오전 11시53분께 진화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점포와 창고 등 시설 20개가 소실됐다. 이 중 7개는 전소됐다. 불은 전통시장 내 통닭집에서 발생해 인근 청과물시장으로 옮겨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길을 목격한 한 상인은 “주변 상인들이 소화기 두 대를 들고 진화에 나섰으나 실패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시장에는 화재 알림장치와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불이 꺼지자 상인들은 잿더미 속에서 불에 그을리고 물에 젖은 과일을 꺼내 옮겼다. 검게 탄 과일들이 시장 바닥에 뒹굴었다. 한 상인은 “극소량의 멀쩡한 과일도 떨이로나 팔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60대 상인 나모씨도 “40년 장사하면서 이런 큰불은 처음”이라며 “창고까지 타서 추석 전에 장사를 재개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재산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추석 대목을 대비해 점포마다 수천만원어치의 물량을 확보해뒀기 때문이다. 동영화 청량리청과물시장상인회장은 “피해 상인 중 절반 정도만 화재보험에 가입된 상태”라며 “가입됐다고 해도 보상액이 적어 시와 구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청은 “관련 법령을 검토해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