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장 권한대행·동구청 공무원 등 대거 기소 의견 검찰 송치
경찰 "관리부실·미흡한 재난대응 합쳐진 사고"…법조계 의견 분분
"지하차도 사고는 인재" 지자체장·공무원 형사책임 첫 사례(종합3보)
지자체장과 공무원이 재해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 책임과 관련 처음으로 형사 처벌 대상에 올랐다.

지난 7월 폭우로 3명이 숨진 부산 동구 초량 지하차도 사고 당시 물이 차면 자동으로 진입 금지 알림을 표시하는 전광판은 고장 나 있었고 부산시 재난 컨트롤타워였던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자택에서 잠을 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와 동구는 하지도 않은 대책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하차도를 부실하게 관리한 혐의 등으로 동구청 공무원들과 인명피해가 난 재해 사고에도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은 혐의로 변성완 권한대행을 각각 검찰에 넘길 예정이다.

"지하차도 사고는 인재" 지자체장·공무원 형사책임 첫 사례(종합3보)
◇ 지하차도 사고 당일 무슨 일이?
부산경찰청은 14일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사고 수사 결과 설명에서 직무유기 혐의로 변 권한대행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동구 부구청장과 담당 부서 공무원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폭우 때 실제 하지도 않은 상황판단 회의를 했다고 회의록을 작성한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행사)로 동구청 공무원 2명과 부산시 공무원 1명도 각각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다.

경찰에 따르면 변 권한대행은 호우경보가 발령된 지난 7월 23일 밤 부산시 재난 대응 총괄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초량 제1지하차도 사고 상황을 보고받고도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 등 직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변 권한대행은 이날 외부에서 술을 마시며 저녁을 먹은 뒤 시청으로 복귀하지 않은 채 귀가했고, 자정 이후 지하차도 침수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오전까지 잠을 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런 변 권한대행 행위가 부산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총지휘하는 책임자의 역할과 임무를 져버린 것으로 판단했다.

부산시장(권한대행) 재난 대응 임무 카드를 보면 변 권한대행은 상황판단 회의를 주재하고 사망자, 중상자가 나온 재해나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1시간 이내에 현장을 확인해야 하는 등의 매뉴얼을 따라야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

동구 부구청장과 담당 부서 공무원 3명은 지하차도 시설관리를 맡고 있었지만, 배수로·전광판 등 재난대비시설 관리가 부실했고 침수 여부를 감시하거나 사전에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지하차도에 30㎝로 물이 차면 자동으로 진입 금지 통보가 나타나야 하는 입구 전광판은 고장 나 있었고 관리책임자인 동구청은 언제부터 고장 났는지도 알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하차도 사고 이후 지자체 책임이 불거지자 부산시와 동구는 하지도 않은 상황판단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지하차도 사고는 인재" 지자체장·공무원 형사책임 첫 사례(종합3보)
◇ 재해 사고 관련 첫 공무원 책임 물은 경찰 수사
그동안 폭우로 인한 지하차도나 터널 등의 침수로 인한 인명피해와 관련해 지자체가 국가배상 판결을 받은 경우는 있었으나 직간접적인 사고 책임을 안고 형사상 처벌 대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그동안 수사기록만 1만 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 법원 판례 검토는 물론 내외부 전문가 자문과 현장 감식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들의 기소 의견 송치를 결정했다.

앞으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될 변 권한대행과 동구청 공무원들의 최종 기소 여부와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 판단이 주목된다.

경찰은 이번 사고에 대해 지하차도 침수 상태를 알려주는 전광판을 고장 난 채 방치하는 등 부실하게 시설을 관리하고 침수 여부 등 상황 파악을 하지 않은 안이한 재난 대응에 따른 사고라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사고 당시 집중호우로 배수시설 설계조건보다 많은 양의 빗물이 장시간 과도하게 유입됐고 배수펌프가 모두 작동 중인 사실은 확인했다.

하지만 배수펌프 저류조에 이물질이 유입되면서 배수량이 저하됐고 지하차도 입구 배수로가 일부 막혀 유입되는 빗물이 늘어난 점을 고려할 때 평소 배수펌프 관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지하차도 침수 원인은 다량의 빗물 유입, 배수량 저하, 기록적인 폭우라고 볼 수 있으나 사망사고 발생 경위는 부실한 시설 관리와 안이한 재난 대응에 따른 인재"라고 말했다.

앞서 지하차도 사망자 유족은 "이번 참사로 하위 공무원 몇 명 처벌하는 걸 원치 않으며 고위 공무원이 사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지하차도 사고는 인재" 지자체장·공무원 형사책임 첫 사례(종합3보)
◇ 재해 사고 공무원 법적 책임 선례 될까
이번 경찰 수사는 재해 사고 때 공무원의 주의 의무와 법적 책임 기준을 명시하는 선례가 될 수도 있어 공직사회는 물론 법조계가 주목하고 있다.

부산 법조타운 한 변호사는 "동구 부구청장과 담당 부서 공무원들이 있지도 않은 회의를 했다고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한 행위는 죄질 또한 불량하다"며 처벌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변성완 권한대행이 받는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경찰이 밝힌 내용만으로는 예단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호우경보가 발령된 7월 23일 밤 변 권한대행이 사고 상황을 보고받고도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경찰이 밝혔는데 구체적인 지시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모호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에 밝은 한 변호사는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직무에 대한 의식적인 방임이나 포기 등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며 "공무원이 태만, 분망, 착각 등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나 형식적으로 성실한 직무수행을 못 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며 범죄 성립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하차도 사고는 인재" 지자체장·공무원 형사책임 첫 사례(종합3보)
◇ 고개 숙인 부산시·동구청 "재난 대응 시스템 업그레이드 계기"
이날 경찰 수사 결과에 대해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시장 권한대행은 재난안전 대책을 총괄하는 자리로 재난 사고 발생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자리"라며 "인명사고가 발생한 점에서 송구스럽고 유족과 시민께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시 재난 대응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겠다"며 "향후 조사과정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이번 사건으로 시정이 흔들리거나 한 치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강제추행으로 불명예 퇴진한 오거돈 전 시장에 이어 변 권한대행이 직무유기 혐의로 정식 재판에 넘겨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청 공무원들은 또 한 번 당혹해했다.

부구청장 등 공무원 4명이 검찰에 송치될 예정인 동구청 역시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라면서 "법적으로 책임소재가 밝혀진다면 이에 따라 동구청이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고 침수 등 비 피해 신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접수됐다"며 "불가피한 사항들이 있는 만큼 이 부분 역시 앞으로 기소 과정에서 잘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청은 사고 이후 매뉴얼을 점검하고 행정안전부 지원에 따라 지하차도 자동통제 시스템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