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 놓고 의료계 내부 반발 등 갈등요소 잔재…시민단체는 '밀실야합' 비판
'파업 vs 고발' 극한까지 갔던 의-정 갈등 한 달 만에 일단락
"국민의 건강과 보건의료제도의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지역의료, 필수 의료, 의학교육 및 전공의 수련체계의 발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합의한다.

"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의 정책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 무기한 집단휴진에 나섰던 의료계가 4일 더불어민주당 및 정부와 잇따라 합의하면서 의·정 갈등은 일단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둘러싸고 의료계 내부의 반발이 나오는 데다 시민단체는 '밀실 거래'라고 규탄하고 있어 향후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 7월 당정 발표 후 촉발된 갈등…'강대강' 치닫던 정부-의료계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지난 7월 23일 발표된 '의대 정원 확충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 이후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022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늘려 10년간 4천명의 의사를 추가로 양성하고, 이 가운데 3천명은 '지역의사'로 육성하는 방안을 확정했으나, 의료계는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특히 대형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젊은 의사'들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

전공의들은 정부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8월 7일 하루 동안 응급실, 분만실, 투석실 등과 같은 필수 유지 업무까지 모두 포함해 모든 전공의가 업무를 중단하는 단체 행동에 나섰다.

일주일 뒤인 14일에는 개원의 중심의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총파업이 있었는데 전공의들은 여기에도 동참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집단휴진을 하루 앞둔 8월 6일, 13일 두 차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며 휴진 계획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의료계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전공의들은 지난달 21일부터 무기한 집단휴진을 강행했고, 앞선 휴진에서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웠던 전임의(펠로)와 개원의까지 힘을 보탰다.

의과대학생들은 9월로 예정돼 있던 국가고시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전공의·전임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은 전공의 등 수 명을 경찰에 고발하자, 의료계에서는 사직서 제출, 진료 중단 등으로 맞서는 등 양측의 갈등은 연일 '강 대 강'으로 치달았다.

'파업 vs 고발' 극한까지 갔던 의-정 갈등 한 달 만에 일단락
◇ 정부, 국회, 범 의료계까지 나섰지만…쉽지 않았던 합의 과정
그간 정부는 물론, 국회, 범 의료계 인사들까지 나서 갈등 해결을 시도했다.

복지부는 우선 박능후 장관 명의로 지난달 22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어떠한 전제조건 없이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을 수도권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이후 의료계와 논의하며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틀 뒤인 24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의협이 간담회를 가졌고, 이후 복지부와 의협이 26일 새벽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여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정책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마련하기도 했다.

국회는 물론, 의료계 원로 등도 '젊은 의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힘을 보탰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당시 보건복지위원장)은 대전협이' 정부 합의를 신뢰할 수 없다'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지난 28일 전공의들과 면담을 가졌고 법안 추진 중단, 국회 내 협의기구 설치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국립대병원협의회, 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 대한수련병원협의회 등이 참여한 '의학교육 및 수련병원 협의체' 역시 전공의들과 만나 정부와의 합의가 제대로 지켜질지를 놓고 함께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무 부처인 복지부를 시작으로 국무총리, 국회, 범 의료계까지 설득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다 여당이 주요 정책의 '원점 재논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정부 역시 국회와 의료계의 합의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밝히면서 의료계 내부 단일안 마련, 국회·정부 협상, 합의문 서명까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파업 vs 고발' 극한까지 갔던 의-정 갈등 한 달 만에 일단락
◇ 곳곳에 남은 갈등 '불씨'…전공의 단체 반발에, 시민단체 "밀실야합" 지적
일단 정부와 의료계, 국회와 의료계가 각각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극단적 대치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곳곳에 갈등의 불씨가 산적해 있다.

이날 합의 사실이 알려진 뒤, 전공의들은 관련 일정이나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박지현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자고 일어났는데 나는 모르는 보도자료가.

회장이 '패싱' 당한 건지"라면서 "나 없이 합의문을 진행한다는 건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합의문 서명이 당초 예정된 시각보다 늦어진 것 역시 내부 반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의협의 합의문 서명은 애초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1시간 30분 정도 지연됐다 오전 10시께 진행됐다.

복지부와 의협 사이의 합의문 서명 일정 역시 오전 11시에서 두차례 뒤로 밀려 오후 2시 40분께 진행됐다.

공공의대 등 정책 추진을 중단하게 된 점을 두고 시민사회단체의 비판도 만만찮다.

시민단체는 이번 합의를 '밀실 합의'로 규정했다.

참여연대,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176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여당과 의협이 공공의료 정책의 진퇴를 놓고 협상을 벌인 끝에 사실상 공공의료 개혁 포기를 선언했다"며 규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