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여건상 의원급은 안전장치 마련 어려워…근본 대책 논의돼야"
"호신용품이라도 사야하나" 임세원법 사각지대 의원급 병원 불안
임세원 교수에 이어 또 한명의 정신과 의사가 흉기에 숨을 거두자 의료계에서는 이른바 임세원법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5일 60대 입원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A 원장은 부산 북구 화명동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며 외래진료를 중심으로 49병상을 갖춘 개방 병동을 운영해왔다.

남성이 인화 물질을 뿌리고 흉기 난동을 부렸지만, 해당 병원은 이를 제압할 보안 인력은커녕 난동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비상벨, 비상탈출구 등이 전무했다.

100개 이상 병상을 갖춘 병원이 아니면 임세원법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과된 이른바 임세원법은 의료인에게 중상해를 입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의료기관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의료인과 환자 안전을 위한 보안 장비를 설치하고 보안 인력도 배치하도록 했다.

이어 올해 4월 시행된 의료법 시행규칙은 100개 이상 병상을 갖춘 병원·정신병원 또는 종합병원을 개설할 경우 보안 전담인력을 1명 이상 배치하고, 비상상황 시 경찰관서에 신고할 수 있는 비상경보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100병상 이상은 안전관리료가 책정돼 일정 부분 수가 지원도 받게 됐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의원급 의료기관은 제외됐다.

시행규칙 개정 논의 당시에도 이 부분은 치열하게 논의됐지만, 끝내 대상에서 제외됐다.

비상벨 1개를 설치하는 데만 연간 300만원가량, 보안 인력은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데 외부 지원 없이 의원급에서 이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했던 권준수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형병원이 보안요원 배치와 비상탈출구 등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있는데도 100% 사고를 예방하기 힘든데 의원급은 속수무책"이라며 "작은 병원도 비상상황 시 안전대책 관련 논의를 하다가 현재로서는 무리라고 판단해 논의가 흐지부지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의원급 병원에서도 의료진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부산의 100병상 이하 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사고 이후 정신병원 의사들이 '개인용 호신 도구라도 구입해야 하지 않느냐'며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밟으면 112에 신고되는 비상벨 등이 의무적으로 도입될 수 있도록 예산 지원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강대식 부산시의사회 회장은 "작은 병원이 자체 예산으로 보안장비와 인력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의료인 진료 거부권, 의료인 폭행 시 반의사불벌죄 삭제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안전진료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