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 미투' 조사 결정 5개월 뒤 '조용히' 종결
검찰 수사·법무부 조사 이유로 중단…박원순 사건 처리 향방 주목
인권위 2년전 '미투' 직권조사 흐지부지…이번엔 다를까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자 측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를 공식 요청하면서 박 전 시장 관련 의혹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이 인권위 몫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29일 인권위 등에 따르면 특정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인권위가 직권조사한 대표 선례로는 2018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사례가 있다.

당시 인권위는 안 전 국장의 성추행과 인사보복 의혹에 더해 검찰 내 성희롱·성폭력 전반까지 직권조사하겠다고 발표해놓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5개월 만에 조사를 종결했다.

인권위는 당시 조사에서 검찰 내 성희롱·성추행 의혹을 추가로 확인했지만, 피해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체 규명을 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강제수사권이 없는 인권위가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 측 요청에 따라 직권조사를 결정하더라도 앞선 사례처럼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권위 2년전 '미투' 직권조사 흐지부지…이번엔 다를까
◇ 2018년 인권위 '검찰 미투' 직권조사…5개월 뒤 조용히 종결
미투 폭로 당시 서 검사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김재련 변호사는 2018년 2월 인권위에 안 전 국장의 성추행과 2차 가해를 조사해달라며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진정을 접수한 다음 날 브리핑을 열고 해당 사건을 비롯해 검찰 전반의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검찰 조직 전체에 대한 인권위 직권조사는 처음이어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인권위는 같은 해 7월 서 검사 측 진정을 '각하' 처리하고 직권조사를 종결했다.

조사를 개시할 때와는 달리 종결 사실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결정이 나왔다는 사실은 지난해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알려졌다.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인권위가 2001년 이후로 실시한 직권조사 192건 중 해당 직권조사만 유일하게 각하됐다"며 검찰이 부담스러워 직권조사를 중단한 것이 아니었느냐고 물었다.

피감기관장으로 당시 국회에 출석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검찰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라며 "서지현 검사 사건은 재판 중인 사건에 해당해 각하했다"고 답변했다.

인권위는 해당 사건 결정문에서 "검찰 수사 결과 (안 전 국장의) 추행 혐의는 공소기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는 불구속 기소가 됐으므로 진정 사건을 각하한다"고 했다.

그 근거로는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에 관해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경우는 각하 사유'라고 정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조항을 들었다.

검찰 내 성희롱·성폭력 전반에 대한 직권조사도 법무부가 조사에 나섰다는 이유로 중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진정 사건 결정문에서 "법무부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를 만들어 검찰을 조사하기로 했고, 인권위가 유사한 전수조사를 거듭할 경우 부정적 인식이나 반발이 생겨 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조사 중단 이유를 밝혔다.

인권위 2년전 '미투' 직권조사 흐지부지…이번엔 다를까
◇ 박원순 사건도 이미 수사 진행 중…인권위에 강제수사권 없는 한계도
이런 전례 때문에 박 전 시장 관련 사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피해자 지원단체들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성희롱 의혹과 서울시 관계자들의 묵인·방조 의혹, 고소 사실 유출 의혹 등에 대한 조사를 인권위에 요청했지만, 이에 관한 수사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권위가 직권조사를 결정하더라도 대부분 각하 처분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제수사권이 없는 인권위 조사의 한계도 지적된다.

2년 전 검찰 대상 직권조사 당시 인권위는 관계인 진술 등을 토대로 검찰 내에서 성희롱·성추행이 발생했다고 의심되지만 징계나 입건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 9건을 추가로 파악하고, 이 가운데 검찰의 후속 조치가 없는 4건에 대해 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피해를 부인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개별사건의 조사를 더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밝혔다.

인권위에 압수수색 등 수단을 포함한 강제수사권이 없는 이상 자발적 진술이나 임의제출 성격의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사건 관계인들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진상규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연합뉴스는 당시 인권위가 확인한 검찰 내 성희롱·성추행 의심 사례의 조치 결과를 문의했으나, 인권위 관계자는 "진정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 등은 비공개가 원칙이어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