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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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함께한 시간이다. 반 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 사람의 갈등 관계는 격화되고 있다. 둘의 갈등에 본격적으로 불 붙은 것은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다. 현재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직무 권한은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끝난 듯, 끝난 것 같진 않은 상태. 지금까지 어떤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 헷갈리는 독자들을 위해 정리해본다.

◆秋 등장과 함께 尹 측근 '좌천성' 인사

윤 총장은 지난해 7월25일 취임했다. 취임 당시 법무부의 수장은 박상기 전 장관이었다. 같은 해 9월9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맡고 있던 조국 전 장관이 그 자리를 받았다. 그러나 자녀 입시비리 의혹, 사모펀드 비리 의혹 등의 문제로 취임 35일 만에 사퇴했다. 추 장관은 '검찰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며 지난 1월3일 장관직에 올랐다.

추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윤 총장의 '수족'을 모두 쳐냈다. 취임 열흘 만에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급 간부 32명을 갈아치웠다.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의혹 수사를 이끌던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옮겨갔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지휘 라인에 있던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이동했다. 조국 전 장관 사건,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모두를 실무적으로 도맡았던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연수원장으로 전보했다. 모두 현 정권에 불리한 수사를 이끌던 인물들이었다. 이같은 인사를 두고 법조계에선 "추 장관이 윤 총장의 팔다리를 다 잘랐다" "총장 '라인'부터 끊어내면서 윤 총장 압박에 들어갔다"는 평을 내렸다.

◆3월 말 '검언유착' 의혹 시작

그래도 서초동의 시계는 돌아간다. 검찰은 1월 말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송철호 울산시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13명을 재판에 넘겼다. 송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로, 검찰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송 시장의 경쟁 후보에 대해 경찰이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수사를 벌였다고 판단했다. 윤 총장의 장모 최모씨도 잔고증명 위조 혐의로 기소됐다. 2013년 경기 성남시 도촌동 땅을 사들이기 위해 총 350억원 규모 잔고증명서를 위조했다고 봤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에 불을 붙인 건 3월31일 나온 '검언유착' 의혹 보도였다. MBC는 <"가족 지키려면 유시민 비위 내놔라"…공포의 취재>라는 제목으로 저녁 뉴스를 내놨다. 채널A의 이 모 기자가 윤 총장의 최측근과 결탁해 강압적인 취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최측근은 부산으로 내려간 H 검사장으로 지목됐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사건이다. 대검찰청 감찰부의 한동수 감찰부장은 뉴스 보도가 나온지 일주일 뒤인 4월7일, 해당 사건 감찰에 착수하겠다고 윤 총장에게 알렸다. 대검 감찰부는 검사들의 비위와 기강, 사건평정 등을 살펴보는 곳이다. 그러나 윤 총장은 8일 이 사건을 대검 인권부가 맡도록 결정했다. 인권부는 인권침해 관련사건을 지휘, 감독하는 곳이다. 한편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이 사건과 관련해 채널A의 이 모 기자와 H 검사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고발건은 같은 달 1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맡겨졌다.

◆6월 "전문자문단이 웬말이냐" 尹 '제식구 감싸기' 논란

사건 수사는 빠르게 흘러갔다. 6월2일, 서울중앙지검은 채널A 소속 이 모 기자와 같은 팀 소속 기자들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같은달 16일에는 H 검사장의 휴대폰도 압수수색했다. 이 기자는 "수사팀을 믿기 어렵다"며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냈다.

전문수사자문단이란 검찰 수사팀과 지휘부의 의견이 다를 때,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사건 관계인을 재판에 넘길지 말지를 결정하는 자문기구다. 검찰총장의 권한으로 열 수 있다. 사건 관계인은 이 제도를 직접 신청할 수 없다. 이 모 기자는 '진정서'의 형태로 이 제도를 활용하려했고, 윤 총장은 6월19일 이를 받아들여 전문수사자문단을 열기로 했다.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결정에 추 장관은 "나쁜 선례"라며 비판했다. 6월29일 일이다. 윤 총장이 '제식구 감싸기'에 나섰다고 본 것이다. 서울중앙지검도 발끈했다. 수사팀은 이튿날 대검에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멈추고 우리에게 '특임검사'에 준하는 독립적 지위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검은 이를 거부했다. 참고로 특임검사란 검사와 관련된 범죄를 수사하는 검사로, 윗사람의 지휘나 감독을 받지 않고 수사 결과만 검찰총장에게 보고한다.

◆7월 秋·尹 "수사지휘권 어디까진가" 놓고 격돌

지난 2일, 추 장관은 직접 칼을 빼들었다. 윤 총장에게 "수사자문단 소집을 멈추고, 수사팀에 대해 검찰총장이 지휘하지 마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수사 지휘를 하지 마라는 지휘'를 내린 것을 두고 이것이 합당하냐 아니냐가 논란이 됐다.

윤 총장은 이를 즉각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루 뒤인 3일, 전국 검사장 회의를 소집해 추 장관의 수사지휘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했다. 전국 검사장 회의는 사실상 전국 모든 검사들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로 볼 수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사장 회의에서 도출된 결과가 만약 추 장관의 지휘 내용과 다르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검사들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지 않겠냐"고 했다. 검사장 회의는 "전문수사자문단 절차를 중단하고, 수사를 위해 특임검사 도입이 필요하며, 장관이 총장에게 수사지휘를 하지 마라고 한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검사장 회의가 끝났지만 윤 총장은 계속 입을 다물었다.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장관이 지시를 내린지 엿새째 되던 지난 7일, 추 장관은 "지휘 사항을 문언대로 신속하게 이행하라"며 윤 총장에게 재차 압박을 가했다. "흔들어대도 몸무게가 100㎏이라 안 흔들린다"던 윤 총장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추 장관은 하루 뒤인 8일, 윤 총장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9일 오전10시까지 답변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윤 총장은 통첩을 받은 그날 오후 드디어 입을 열었다. "김영대 서울고검장 필두로 한 독립적 수사본부를 구성하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추 장관은 2시간 뒤에 "이는 지시이행이 아니다"라며 건의를 거부했다.

◆'겉보기'엔 수용인데…尹, '반격' 들어갈까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를 두고 윤 총장은 결국 추 장관의 지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 해당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팀이 수사를 계속하고, 검찰총장은 수사 지휘를 안 하기로 9일 결정했다. 이것으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은 일단 봉합되는 듯 보이지만, 윤 총장이 '반격'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검찰청이 9일 발표한 입장문 전문을 보자.
"채널A 사건 관련입니다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으로서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 발생
결과적으로 중앙지검이 자체 수사하게 됨
이러한 사실 중앙지검에 통보필
총장은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의 직무배제를 당하고 수사지휘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음
지휘권 발동 이후 법무부로부터 서울고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독립 수사본부 설치 제안을 받고 이를 전폭 수용하였으며 어제 법무부로부터 공개 건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음"


법조계는 사실상 윤 총장이 전하는 이 메시지의 문구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다. 평소에는 듣기 힘든 단어인 '형성적 처분'이 대표적이다. 별도 조치가 없어도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처분을 가리킨다. 윤 총장이 이 단어를 언급한 것은 추 장관이 위법·부당한 지시로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했고, 장관이 직권을 남용했음을 지적하는 총장의 메시지가 담겼다는 설명이 나온다. 또 '쟁송절차'를 언급한 것을 두고, "윤 총장이 권한쟁의심판 등을 통해 수사지휘권의 범위를 법리적으로 다툴 가능성도 열어둔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는 중이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무부 입장문 가안'을 올렸는데, 정작 법무부가 기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배포한 내용과는 달라 "윤 총장과의 수사지휘권 사건 처리를 두고 추 장관과 정치권 간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법무부 직원들과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을 밝히며 이같은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해명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