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한결같이 "양형부당 항소 시 구체적 사유 들어야"
"은수미 파기환송심 열려도 당선무효형 불가…검찰 실수로 사실상 면죄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당선무효 위기에 몰렸던 은수미 경기 성남시장이 9일 대법원의 원심파기 판결로 기사회생한 데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 검찰이 '결정적 실수'를 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검찰은 항소 과정에서 기본적인 절차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에 즉답을 피한 채 "판결문을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답변만을 내놓았다.

'검찰 결정적 실수' 지적에 성남지청 "판결 검토중" 답변만
대법원은 이날 은 시장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면서 "검사는 1심 유죄 부분에 대해 항소장에 '양형부당'이라고 기재했을 뿐"이라며 "이는 적법한 양형부당의 항소이유 기재라고 볼 수 없다"면서 검찰의 잘못을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은 시장을 정치자금법 45조 1항 위반(불법 정치자금 수수)과 45조 2항 5호 위반(법인 정치자금 수수)의 상상적 경합범(한 개의 행위가 여러 죄에 해당하는 경우)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1심이 은 시장에 대해 당선유지에 해당하는 벌금 90만원을 선고하자 항소하면서 유·무죄 판단이 갈린 각각의 공소사실에 대해 건별로 조목조목 항소이유를 달았어야 함에도 일부 사항에 대해 단순히 '양형부당'이라는 사유만을 기재했다.

'검찰 결정적 실수' 지적에 성남지청 "판결 검토중" 답변만
대법원은 검찰의 잘못된 항소이유에도 불구하고 2심 재판부가 피고인인 은 시장의 항소이유 등을 배척한 채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1차적으로는 항소장과 항소이유서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검찰이, 2차적으로는 이를 토대로 양형을 높여 판결한 2심 재판부 모두 100만 인구 단체장의 정치적 운명을 가르는 재판에서 치명적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수사와 기소, 재판을 책임져온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대법원 판결 내용을 검토하고, 향후 파기환송심을 대비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검찰의 결정적 실수가 있었다는 대법 판결문의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즉답을 피한 채 "공식 입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만 말했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대법원의 판결이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되지만, 대법원의 돌직구 지적에 법률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항소 절차에 문제가 있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 아니냐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법조계에서는 항소이유에 단순히 '양형부당'이라는 문구만을 기재해 놓고 이유를 쓰지 않았다면 판결 자체가 불가하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형부당과 관련한 항소이유서에 단순히 '형이 너무 적다'고만 쓰는 일은 없다"며 "'왜?'에 대해서는 반드시 설명하고, 사안의 중대성, 죄질, 개전의 정 등 여러 양형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보통인데 검사의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검찰 결정적 실수' 지적에 성남지청 "판결 검토중" 답변만
이어 "2017년에도 대법원에서 이번과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온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한 현직 판사는 "죄명이 다르다면 그에 대해서도 각각 항소이유를 적법하게 기재하는 것이 맞다"며 "누구나 피고인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피고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법원이 검사가 이미 제출한 항소 이유 기재가 적법하지 않았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파기환송심도 1심에서 선고한 벌금 90만원보다 무거운 형을 판결할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판단이다.

수원지역의 한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이 열린다 해도 은 시장이 당선무효형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은 시장 수사에 심혈을 기울여온 검찰이 항소이유소를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은 시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