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필요성 인정될 경우만 감형…심신미약에 대한 여론 냉소 여전
'심신미약=감형' 공식 적용됐나…안인득 무기징역 판결 배경은
심신미약은 곧 감형이라는 공식이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43)에게도 적용된 것일까.

정신질환 여부는 감형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논란도 있지만 이번 안인득 판결은 심신미약이 '흉악범 방패막이'로 작용한 경우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 시선이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1부(김진석 고법 부장판사)는 24일 살인·현주건조물방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인득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심신미약 인정 여부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사형 선고가 너무 무거워 부당했는지를 가려내는 데 있었다.

재판부는 안인득의 범행 내용을 종합하면 그 잔혹성을 미뤄봤을 때 사형 선고가 옳지만,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해 감경한다고 판시했다.

1심 사형 선고가 부당한 판결은 아니지만,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인정되기 때문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재판부 판단의 배경에는 죄형법정주의와 함께 근대형법의 중요한 기본원칙 중 하나로 꼽히는 책임주의와 맞닿아 있다.

책임주의란 책임이 없으면 범죄 역시 성립하지 않고 범죄 형량도 책임의 크고 작음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우리 형법의 원칙이다.

자신의 행위에 책임질 능력이 없는 자와 정상인을 똑같이 취급해 같은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뜻이다.

이는 책임의 범위 내로 형벌권을 한정해 심하면 사형까지 이를 수 있는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다.

형법 10조 55조 1항에도 심신미약으로 사형을 감경할 경우 무기징역 또는 20∼50년의 징역·금고형으로 벌하게끔 명시됐다.

또 2018년 형법개정안을 통해 범죄를 저질러도 심신미약은 감경 필요성이 인정될 때에만 적용하는 '임의적 감경'으로 수정됐다.

'심신미약=감형' 공식 적용됐나…안인득 무기징역 판결 배경은
단순히 경미한 정신질환이나 술을 마셨다는 것만으로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을 끌어내긴 힘든 구조다.

법원의 안인득 감경 또한 원칙적으로 우리 형법 원칙이나 세부 조항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심신미약에 대한 여론의 냉소가 그치지 않는 까닭은 이를 근거로 형 감경이 밥 먹듯 자주 이뤄진다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음주 심신미약' 판단으로 감형받은 조두순이나 피고의 정신질환이 인정된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안인득 항소심 판결에 대한 누리꾼 반응도 '또 심신미약이라니. 기가 찬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인천 8세 여아 살인사건'이나 '강원도 제22보병사단 총기 난사'처럼 심신미약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도 많다.

반면 심신미약이란 정신의학이 아닌 형법 개념으로 정신질환 여부가 감경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회 봉직의협회는 2018년 성명을 내고 "정신질환은 그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며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이 있다면 치료를 받게 하고 처벌받아야 할 범죄가 있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남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변호사는 "안인득 판결을 보면 재판부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며 "1심 사형 선고는 아무래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다 보니 배심원 의견을 적극 수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인득이 계획적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는데 심신미약으로 감형됐다는 식으로만 접근하면 판결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정신질환에 의한 범행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에 여론의 관심이 더 쏠렸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