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볼거리 풍성하고, 이야기도 탄탄

1930년대는 불안의 시대였다.

유럽에선 파시즘이 준동했고, 미국은 대공황 여파로 실업이 속출했다.

현실이 힘들수록 사람들은 꿈을 찾았다.

춤과 노래로 가득한,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뮤지컬은 여러 장르를 빨아들이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예술 장르로 우뚝 섰다.

할리우드는 뮤지컬 영화를 만드느라 분주했고, 재즈 씬에서는 너도, 나도 뮤지컬 넘버(노래)를 연주했다.

빅밴드들이 연주하는 춤곡, 스윙이 재즈계를 장악하던 시기였다.

지난 20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동명 영화(1933)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 뮤지컬은 1980년 미국 뉴욕 윈터극장에서 초연돼 그해 토니상 최우수작품상과 안무상을 수상했으며 현재까지 5천회 이상 공연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초연된 후 24년간 꾸준히 관객들을 만났다.

마지막 공연이었던 2018년에는 평균 객석점유율 95%, 전석 매진 38회로 역대 최다매진기록을 갈아치웠다.

오래된 공연이지만, 여전히 관객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건 뮤지컬로서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춤이 있고, 노래가 있다.

시골 소녀의 성공담이라는 확실한 이야기도 있다.

무엇보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는 뮤지컬 장르에 대한 환상과 꿈이 심어져 있다.

뮤지컬이라는 꿈…종합선물세트 같은 '브로드웨이 42번가'
시골 출신 페기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뉴욕으로 간다.

왕년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최고의 자리에서 밀려난 연출가 줄리안 마쉬는 '프리티 레이디'라는 작품으로 재기를 노린다.

그러나 이제 내리막길에 들어선 배우, 도로시가 이미 여주인공으로 낙점된 상태다.

도로시의 애인 애브너가 10만달러라는 거액을 뮤지컬 작품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도로시와 함께 뮤지컬을 시작한 마쉬는 어느 날, 거리에서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신나게 춤을 추는 페기의 모습을 보고, 그의 재능을 첫눈에 알아본다.

오프닝은 통상 작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 마련인데, 이 뮤지컬은 막이 오르면서부터 화려한 탭댄스와 음악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페기가 처음 등장하는 첫 무대인 '영 앤 헬시'(Young and Healthy)를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면, 도로시의 독백과 함께 그림자를 이용한 무대가 펼쳐지는 '섀도 왈츠'(Shadow Waltz)가 나올 때 즈음이면 이 사랑스러운 뮤지컬의 팬이 돼 있을 공산이 크다.

뮤지컬이라는 꿈…종합선물세트 같은 '브로드웨이 42번가'
탭댄스를 얼굴로 내세운 작품이지만, 탭댄스만 있는 건 아니다.

발레의 '파드되'(2인무)와 군무가 영리하게 배치돼 있고,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답게 연출에서 영화적인 특징이 담긴 미장센(화면구도)도 두드러진다.

(이 뮤지컬은 프랑스와 미국 뮤지컬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 '라라랜드'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특정 장면은 물론,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는 브로드웨이 42번가가 미국 뮤지컬 영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신인으로 무대에 나가지만 돌아올 때는 스타가 되어 있을 거야" "그동안의 피땀이 오늘 밤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의 희망, 미래 인생이 너의 손에 달려 있다"와 같은 고색창연한 대사도 옛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반길만하다.

뮤지컬이라는 꿈…종합선물세트 같은 '브로드웨이 42번가'
볼거리가 풍부하고, 넘버도 좋지만, 이 뮤지컬의 장점은 이 모든 볼거리와 신명 나는 음악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모두 페기의 성장, 참사랑을 찾는 도로시, 불황을 극복해 나가는 뮤지컬 극단의 이야기로 점점 수렴해 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뮤지컬에 대한 꿈과 희망, 그리고 애정이 작품 면면에 깊이 배어있다.

어쩌면 이 뮤지컬은 배우들을 위한 뮤지컬, 뮤지컬 키드들을 위한 뮤지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뮤지컬에 대한 헌사로 가득 찬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압축하는 문장은 아마 남자 주인공 줄리안 마쉬의 대사일 것이다.

"음악은 계속될거야, 밤새도록 말이지."

관람료 6만~14만원. 공연 시간 2시간40분(인터미션 포함). 공연 기간 8월23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