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폐쇄로 갈 곳 잃은 노인 옹기종기 모여 무더위 쫓아
손 소독·거리두기 안 지켜…"차리리 경로당 여는 게 낫다"
제2·제3 경로당 된 사랑방·교량 밑…코로나19 방역 비상
"어제는 박씨네 집에서 모였고, 오늘은 우리 집이야. 내일은 이씨네 집에서 만나기로 했어"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구일리에 사는 김모(85)씨는 요즈음 동네 주민들과 주전부리하며 한낮 폭염을 피하는 게 일상이 됐다.

여름철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더위를 쫓던 마을회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문 닫은 지 벌써 넉 달이 됐다.

그러는 사이 찾아낸 묘책이 동네 사랑방에 놀러 다니는 '마실'이다.

육영수 생가가 있는 인근 옥천읍 교동리 노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마을에 제법 큰 정자가 2개나 있지만 후끈후끈한 바람이 몰아치는 한낮에는 이곳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해가 진 후의 정자는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로 바뀌지만 이곳 노인들도 한낮에는 이웃 사랑방으로 마실을 가 시원한 열무국수를 말아 먹는 게 생활처럼 됐다.

이런 피서법이 이웃 간 왕래가 활발한 시골에서야 가능하지만, 도심 노인의 사정은 또 다르다.

이들에게는 시원한 콘크리트 그늘과 많은 사람이 모이는 다리 밑이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성지'가 됐다.
제2·제3 경로당 된 사랑방·교량 밑…코로나19 방역 비상
폭염이 맹위를 떨친 22일 청주 무심천의 모충교, 수영교, 장평교, 방서교 아래에는 노인들의 삼삼오오 모여 무더위를 피했다.

모충교 아래 게이트볼장에서 만난 이모씨는 "더위를 피할 수 있고 하천 바람도 시원해 자주 이곳에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인들이 모이는 사랑방이나 교량 밑 등은 사실상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코로나19 사각지대다.

감염병에 취약한 노인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경로당을 폐쇄했는데, 폭염이 심해지면서 제2·제3의 경로당이 곳곳에 생기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한 노인은 "교량 밑이나 나무 그늘 등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오히려 코로나19가 번질 가능성이 있다"며 "차라리 경로당을 여는 게 방역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충북도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교적 공간이 넓은 체육관이나 학교 강당을 무더위 쉼터로 운영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교량 아래까지는 발열 체크나 손 소독제 제공, 마스크 착용 여부 확인 등 행정력이 미칠 수 없다"며 "경로당 개관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나오지 않아 체육관·강당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육관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한다고 해서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서로 떨어져 앉는다고 볼 수도 없다.

더욱이 체육관이나 강당이 없는 시골 노인들에게는 이런 대책이 무용지물이다.

단양군 관계자는 "어르신들에게 집에만 계시라고 하고 전화로 건강을 체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상황에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경로당 폐쇄가 해제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