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귓가 자극하는 넘버, 배우들의 열연도 눈길

1991년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한 재개발지구. 난방도 들지 않고 전기마저 끊긴 허름한 빌딩에 로저와 그의 친구들이 산다.

에이즈에 걸려 있는 로저는 여자 친구의 자살 후 히키코모리처럼 자신의 방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생곡'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선지만 낭비할 뿐이다.

스타 영화감독을 꿈꾸는 로저의 절친한 친구 마크는 로저의 대외 활동을 독려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래층에 사는 이웃 미미가 성냥을 빌리러 로저의 방문을 두드린다.

"우린 여길 빠져나가야 해"…청춘의 한 시기 그린 뮤지컬 '렌트'

'렌트'는 1996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이다.

초연한 해에 토니상 4개 부문, 드라마 부문 퓰리처상, 드라마 데스크상 등 각종 뮤지컬 상을 쓸어 담으며 주목받았다.

극작·작곡가 조나단 라슨(1960~1996)은 브로드웨이 초연을 앞둔 바로 전날 갑작스러운 대동맥 박리로 숨진 채 발견되며 뮤지컬의 성공을 생전에 보지 못했다.

라슨은 오페라 '라 보엠'의 기본적 스토리에 자전적 경험을 입혔다.

자전적 경험은 통상 디테일들이 살아있기 마련이다.

그런 디테일은 자질구레한 사건에서도 드러나지만, 인물의 감정에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인지 '렌트'는 좌절, 상실, 자기연민과 같은 다소 우울한 감정들이 곳곳에 스며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꿈과 희망, 사랑과 같은 감정의 밑바탕이 된다.

'렌트'는 어느 한시기를 지나는 청춘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감정의 흔적들이 가득한 작품이다.

주요 캐릭터이자 주인공 로저의 친구 중 한 명인 모린의 대사가 이 뮤지컬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우린 저 달을 뛰어넘어야 해 여길 빠져나가야 해!"
"우린 여길 빠져나가야 해"…청춘의 한 시기 그린 뮤지컬 '렌트'

다소 우울한 내용이지만, 음악만은 밝고 신명 난다.

1990년대 만들어진 음악은 여전히 통용될만하다.

미미가 로저에게 오늘 밤 나가서 즐기자고 말할 때 나오는 '아웃 투나잇'(Out tonight)은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미미 역의 아이비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로저를 유혹하는데, 이 장면을 보다 보면 아이비의 예전 히트곡 '유혹의 소나타'가 떠오른다.

마크와 조앤이 만난서 탱고를 추는 장면에서 나오는 '탱고 모린'(Tango Maureen)은 세련된 탱고 음악으로 귓가를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모린의 '오버 더 문'(Over the moon)은 2시간 반이 넘는 이 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하다.

모린 역의 전나영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한다.

화려한 원색이 돋보이는 조명과 의상도 밝은 편이어서 우울한 정서를 톤다운시키는 데 일조한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이야기가 다소 산만한 편이다.

한 인물의 감정 밑바닥까지를 깊이 있게 들춰내는 작품은 아니어서 여러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무대 구성도 여름 뮤지컬 대작치고는 비교적 단출한 편이다.

'렌트'의 국내 공연은 지난 2011년 이후 9년 만이다.

브로드웨이 출신 앤디 세뇨르 주니어가 연출했다.

공연은 오는 8월23일까지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관람료 6만~14만원. 공연시간 2시간 40분.
"우린 여길 빠져나가야 해"…청춘의 한 시기 그린 뮤지컬 '렌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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