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영장 기각…"혐의 소명됐다" vs "사실관계만 인정"
검찰, 영장 재청구 없이 불구속 기소 유력…수사심의위 소집 '변수'
법원, 이재용 혐의 유무는 안 밝혀…기소시 재판서 가려질 듯
법원이 9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검찰의 혐의 소명 여부에 대해선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검찰 주변에선 이 부회장의 불구속기소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사실관계와 유·무죄 여부는 본안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이 부회장 측이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원회 소집이 기소 여부의 변수가 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에서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가 법원에 제출한 이 부회장과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수사기록 등은 400권 20만쪽 분량으로 알려졌다.

짧은 기간에 구속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게 영장 재판인 만큼 법원은 이 부회장 등의 혐의가 인정되는지에 관해 기록 전체를 모두 꼼꼼하게 검토했다기보다는 현 단계에서 구속이 필요한지를 중점적으로 따진 것으로 분석된다.

법원이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문구 대신 '기본적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는 문구를 쓴 것은 검찰 수사가 마무리 단계이고 기소가 예상되는 만큼 본안 재판부에 후속 판단을 넘기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지청장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1심 재판의 구속기한이 6개월인데 수사기록도 많고 양쪽이 첨예하게 다투는 상황인 점 등을 고려하면 무리하게 구속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이재용 혐의 유무는 안 밝혀…기소시 재판서 가려질 듯
법원이 혐의를 인정했는지에 관해서는 입장이 엇갈린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객관적인 사실관계만 인정했을 뿐이라는 입장이 우세하지만, 전체적인 취지상 혐의가 인정됐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영장전담 경험이 있는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혐의 인정 여부는 다툼이 있어 영장 단계에서는 언급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을 통해 혐의가 어느 정도 확인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범죄와 무관한 사실관계란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봐야 한다"며 "영장 단계에서 소명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는 충분히 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반면,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며 "사실관계 소명은 합병 등에 국한된 것이고 이 부회장 등의 불법행위 여부는 재판에서 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불구속기소를 염두에 두고 공소유지를 위한 보강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합병과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은 내용이 복잡해 검찰 입장에서도 유죄 입증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법원도 언급했듯 검찰이 1년 7개월에 걸친 수사로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고, 이 부회장이 사실상 수사의 종착역이었던 만큼 추가로 사실관계를 확인할 부분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 이재용 혐의 유무는 안 밝혀…기소시 재판서 가려질 듯
검찰은 아직 이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불구속기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법리 검토와 공소장 작성, 기록 정리 등 수사 마무리 작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일단 이 부회장 등을 구속수사할 필요성까진 없다고 본 상황에서 검찰로서는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소 전까지 혐의 다지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측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은 이 과정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오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열고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할지 여부에 관해 결정할 방침이다.

삼성은 수사심의위 절차에서 검찰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불기소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법원이 이례적으로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서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언급함에 따라 부의심의위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이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의 최종 지시자라고 보는 검찰 입장에선 설령 수사심의위가 열리고 불기소 결정을 권고한다고 해도 권고에 따라 불기소 처분을 내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수사심의위의 결정도 권고에 그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