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에 그림자 드리운 아동·청소년, 장애, 노동, 여성, 이주민의 인권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는 12일 광주 인권교육센터에서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의 인권'을 주제로 집담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전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 장애, 노동, 여성, 이주민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위협했다.

참석자들은 집담회를 통해 침해와 피해의 정도를 가늠해보고 '제2의 코로나'가 도래한다면 어떤 방안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함께 모색했다.

이중 '소 잃고 나면 외양간은 제발 좀 고치자'는 지적이 아프게 다가온다.

코로나19로 바뀐 우리의 인권실태…광주인권사무소 집담회
◇ '수업 진도보다 중요한 건 마음의 방역'…아동·청소년 교육
코로나19 확산으로 교육계는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상황과 마주하게 됐다.

김경희 광주참교육학부모회 지부장은 "우리 사회는 감염 공포보다 입시와 수능성적에 대한 공포가 더 커지고 있다"고 코로나19 시대 교육의 상황을 한마디로 평가했다.

대학이 온라인 교육을 시작하면서 1학기를 규정 지은 것과 달리, 초·중·고는 임시방편으로 접근해 여러 준비 부족으로 인한 혼란은 고스란히 학생, 학부모의 몫이 됐다는 진단이다.

일방적인 온라인 수업, 출석 확인, 과제 제시 등 기존 교육과정을 고수하면서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교육 과정에 대한 수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온라인 개학으로 경제적인 격차가 고스란히 학습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맞벌이·장애 학생, 다문화·위기 가정 등에 대한 교육 정책의 공백을 노출했다.

또 법정 수업일수, 수업 시수, 대학 입시 일정 등을 고수하는 꽉 막힌 교육행정도 문제다.

김 지부장은 "비상시국인데 교육은 유독 비상이 통하지 않는 철옹성"이라며 "지치고 힘든 아이들에게 수업 진도 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마음의 방역이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로 바뀐 우리의 인권실태…광주인권사무소 집담회
◇ '무차별'적인 재난에서도 '차별' 당하는 장애인들
배현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지원팀 부장은 "코로나 19로 감염병이 발생했을 경우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나 대책이 부재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밝혔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전쟁'에서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초기 마스크 수급 문제가 발생했을 때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처럼 부족한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밀렸고, 취약계층을 대하는 국민들의 인식 또한 나빠져 혐오나 차별이 당연시되기도 했다.

이미 격리된 삶을 살고 있는 집단 수용시설 장애인 거주자들은 추가적 대응 방안과 동의 절차도 없이 예방적 코호트 격리조치까지 받았다.

정부는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장애인 거주 시설 1인 1실 기능 보강 예산 추가 확보'를 발표하는 등 정부가 권고한 '장애인 자립 생활' 대신 다시 '시설 속으로' 회귀하는 행보를 보였다.

장애인 복지시설이 폐쇄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자가격리 상태에 놓인 장애인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배 부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장애인단체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장애를 고려한 감염병 기본계획 및 표준매뉴얼 제작'을 요구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언급하며 "소 읽고 나면, 외양간은 제발 좀 고치자"고 호소했다.

코로나19로 바뀐 우리의 인권실태…광주인권사무소 집담회
◇ '감염병 시대' 개인정보 인권
황법량 광주인권회의 간사는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방식은 민주주의와 방역 결과가 잘 조화된 체계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개인의 권리가 심하게 축소됐고, 인권의 기준을 제대로 논의할 시간도 없이 (코로나19 비상 상황에) 초월해 버렸다는 문제가 남는다"고 지적했다.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동선이 공개되고 '자가격리'라는 이름으로 재판에 의하지 않는 '가택 연금'이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동선 공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방식 개선을 권고했지만, 확진자 숫자가 적을 때는 결국 특정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남았고, 자가격리 위치 추적 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이 옳은 지도 논쟁거리다.

황 간사는 "향후 동선 공개가 얼마나 자발적인 검사 요청이나 확진 판정으로 이어졌는가를 따져봐야 하고, 효과가 없다면 정보공개 대상과 범위도 조정해야 한다"며 "자가격리 위치 추적 감시의 방식도 최소한의 것인지 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며 "인권 피해사례가 늘어나기 전에 반성의 논의와 보완의 요구가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바뀐 우리의 인권실태…광주인권사무소 집담회
◇ 노동, 이주민, 여성 인권도 위기
민주노총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연차 소진 강요로 시작된 노동자 피해 양상이 무급 휴직이나 휴업을 거쳐 권고사직과 해고로 확대되고 있다.

민노총 노동 상담 사례 비율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월에는 무급 휴직이나 휴업 수당에 대한 문의가 제일 많았으나, 3월에는 해고나 권고사직에 대한 상담이 가장 많았다.

이에 민노총은 "기업지원 100조등 모든 정부 기업 지원정책은 해고금지,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특히 피해사례는 취약계층,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하는 사례, 이주민에 대한 재난지원금 미지급 등은 코로나19 시대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로 꼽혔다.

여성 분야 집담회 참여자인 광주 여성의 전화 측은 코로나19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이 감소했다는 일부 보도가 나왔지만, 광주 여성의 전화 올해 4월까지의 상담 건수는 전년 대비 27%가량 늘었다며 여성 인권 문제점을 지적했다.

집담회 참석자 중 일부는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위기를 겪었음에도 인권 보장을 위한 대책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무하면 어떡하지 하는 '학습된 무력감'이 가장 큰 우려 지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