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빌라 화재로 3·4살 딸 포함 일가족 4명 숨져
내부 곳곳 검게 그을려…경찰 "정확한 사고·사망 원인 조사 중"

"조그마한 여자애 둘이 배꼽 인사를 하던 게 눈에 선해."
"배꼽인사 눈에 선한데…" 어린이날 자매 목숨 앗아간 화마
5일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의 한 빌라. 어린이날이지만 간밤에 큰 사고 소식을 맞닥뜨린 빌라 주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이날 새벽, 이 빌라 3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소방당국에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해당 빌라 안방에 있던 A(39)씨와 아내 B(35)씨, 4살과 3살배기 딸 등 4명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모두 숨졌다.

일가족 모두 열에 의해 온몸에 화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가족이 살던 집은 곳곳이 검게 그을려 제 모습을 잃었지만, 가족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거실 곳곳이 검게 타 화마의 상처를 생생히 보여줬지만, 3살과 4살배기 두 딸이 사용했을 미끄럼틀과 트램펄린은 여전히 하얀색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엌 가스렌지에는 사골을 끓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바로옆 싱크대 위에는 탁상달력이 가정의 달인 5월을 묵묵히 가리키고 있었다.

"배꼽인사 눈에 선한데…" 어린이날 자매 목숨 앗아간 화마
가족이 사용하던 식탁과 의자 4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 슬픔을 자아냈다.

화재 당시 집 안 방문 3개가 모두 열려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일가족이 있던 방문도 열린 상태라 연기가 쉽게 들어갈 수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관문 손잡이에 걸린 우유 배달 가방과 현관 앞에 있던 초록색 썰매, 꽃잎이 가득 들어있던 비닐봉지는 부부와 두 딸의 생활을 짐작게 했다.

현관 앞에 아빠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두 한 짝과 딸의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화 한 짝이 어지럽게 굴러다니면서 이날 새벽의 긴박함을 알릴 뿐이었다.

해당 빌라에 거주하는 주민 A씨는 "이들 부부가 7년 전에 결혼 준비를 하면서부터 이 빌라에 살았다"며 "두 자매는 볼 때마다 배꼽 인사를 하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참 예뻤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A씨는 "어린이 날인데 새벽에 정신을 잃고 119구급대에 실려 가는 아이들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배꼽인사 눈에 선한데…" 어린이날 자매 목숨 앗아간 화마
이웃들은 평소 이 가족이 화목한 모습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평소 볼 때마다 금실이 좋다고 생각했다"며 "다만 가끔 새벽에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새벽에도 부부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 한 번 가봤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말했다.

해당 빌라는 사고 당시 불이 밖으로까지 번지지 않고, 곳곳에 연기만 가득해 불이 난 곳을 찾는 데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캐한 연기 탓에 가장 먼저 화재 발생을 알아챈 것도 공기청정기였다.

사고가 발생한 빌라 1층에 거주하는 주민은 잠을 자던 중 공기청정기가 연기 탓에 소란스러워지자 깨어나서 119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길은 없고 연기만 가득해 소방당국이 도착해서도 어디서 불이 났는지 바로 확인하기 어려워, 온 빌라 주민에 전화를 해봐서야 불이 난 장소를 알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불이 시작된 장소 등 정확한 사고 원인과 일가족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