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 상호 인도청구는 376건…국내 법원서 심사한 30건 중 1명만 거절 결정
범죄인 외국 송환, 최근 10년간 대부분 허가…정치범만 불허
정부가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인 손정우(24) 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 방식으로 미국 송환 절차를 진행하면서 과거 우리나라와 외국 사이에서 범죄인을 인도한 유사 사례에도 관심이 쏠린다.

범죄인 인도는 범행을 저지른 뒤 외국으로 도망친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조약을 맺은 국가끼리 협조하는 절차다.

우리나라는 1991년 1월 호주를 시작으로 현재 77개국과 조약을 맺고 있다.

이중 양자조약 체결국은 32개다.

2011년 12월 발효된 다자조약인 '범죄인 인도에 관한 유럽 협약'에 따라 45개국과 추가로 체결됐다.

우리나라에서 범죄인을 조약국에 인도할 것을 청구하는 업무는 서울고검이, 청구된 사건을 심사하는 업무는 서울고법이 전속으로 관할한다.

서울고법이 인도 허가 또는 거절 결정을 내리더라도 단심제이기 때문에 불복할 수 있는 절차는 없다.

범죄인 외국 송환, 최근 10년간 대부분 허가…정치범만 불허
◇ 10년간 국외 인도청구 30건 중 중국 정치범 1명만 불허…강제추방 등도 가능
26일 연합뉴스가 최근 10년간(2010~2019년) 서울고법이 인도심사 청구 결정을 내린 사건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접수된 30건 가운데 29건(96.7%)이 허가 결정이었다.

거절 결정은 단 1건에 불과했다.

서울고법은 2013년 1월 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불을 지른 중국인 류창(劉强) 씨에 대해 일본으로의 인도 거절 결정을 내렸다.

한일 범죄인 인도 조약과 국제법상 '정치범 불인도' 원칙을 따른 것이다.

최근 10년간 통계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우리 법원의 정치범 인도 거절 원칙을 확인한 사례는 더 있다.

미국 국적의 베트남인 우엔 후 창 씨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인도 요구를 받았지만, 법원은 2006년 7월 인도 거절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국내 법원이 외국인 정치범의 인도 여부를 심사한 첫 사례였다.

국내 법원에 접수된 범죄인 인도 청구 사건만 놓고 보면 대다수가 '인도 허가' 사례이지만, 우리나라가 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거나 외국으로부터 범죄인 인도 청구를 접수했다고 해서 국내 송환이나 외국 인도가 모두 이뤄지는 건 아니다.

실제 송환 사례는 적다는 뜻이다.

범죄인 인도를 청구한 나라에 실제 범죄자가 거주하지 않거나 이름 등이 달라 법원으로 가기 전에 인도 거절이 되기도 한다.

법무부 국제형사과에서 확인한 2009년부터 2018년까지의 국가 간 범죄인 인도 청구 현황을 보면 국가 간 청구 사건이 고스란히 법원에 접수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의 우리나라와 외국 간 범죄인 인도 청구는 총 376건이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요청한 경우는 73건(19%), 우리나라가 외국에 요청한 경우는 303건(81%)이다.

반면 범죄인 인도 절차를 거치지 못한 경우나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은 경우에도 범죄인의 신병을 확보한 사례가 적지 않다.

강제추방·자진귀국 등 형태의 국가나 기관 간 공조로 해결하는 케이스가 이에 해당한다.

회삿돈 32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해외로 도주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55) 씨는 지난해 6월 강제추방 형식으로 송환된 사례다.

우리나라는 아직 에콰도르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았다.

비서와 가사도우미를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를 받은 김준기(76) 전 DB그룹 회장은 미국에서 자진귀국한 케이스다.

김 전 회장은 여권 무효화 조치와 범죄인인도 청구 등 압박이 계속되자 지난해 10월 귀국했다.

범죄인 외국 송환, 최근 10년간 대부분 허가…정치범만 불허
◇ 중국 투자사기단·캐나다 강사 등…범죄인 외국 송환 주요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범죄인을 송환한 사례는 강력범죄와 사기 사건 등 분야가 다양하다.

높은 수익을 내는 제주도 리조트 개발 사업에 투자하라고 속여 피해자 70여명으로부터 25억원을 가로챈 의혹을 받은 중국 국적의 사기범 5명은 2018년 4월 법원 결정으로 본국으로 송환됐다.

2007년 5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K씨를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 강남 일대의 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던 Y씨는 2010년 11월 법원에서 캐나다로의 송환 결정을 받았다.

2002년 초 일본에서 한국인 여성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뒤 국내로 도피한 이모 씨는 2003년 4월 일본에 인도됐다.

2002년 6월 발효된 '한일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송환이 이뤄진 첫 사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수십 차례에 걸친 강도·성폭행 범죄 후 국내로 도주한 재미교포 강모 씨는 2001년 9월 인도 허가 결정으로 미국에 송환됐다.

1999년 12월 한미 범죄인인도 조약 발효 이후 첫 송환 사례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사로부터 8억3천만원 상당의 차량을 가로챈 혐의로 수배를 받다 국내로 잠입한 독일인 형제는 1995년 8월 법원 결정에 따라 송환됐다.

당시 양국은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외국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아 법무부가 수락한 첫 사례가 됐다.

범죄인 외국 송환, 최근 10년간 대부분 허가…정치범만 불허
◇ 마약여왕 '아이리스' 국내 송환…유섬나·정유라·패터슨 사례도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범죄인 인도가 이뤄진 사례 역시 정치적 게이트 사건에서부터 강력사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국내 여론의 주목도가 높았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국내로 다량의 마약을 공급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마약여왕 '아이리스'(IRIS) 지모 씨는 지난달 31일 미국 LA에서 송환됐다.

보이스피싱(전화사기)으로 수십억 원을 가로챈 뒤 중국으로 도피했던 조직원 등 5명은 지난해 9월 강제송환됐다.

범죄인 5명 동시 송환은 2002년 중국과의 조약 체결 이후로는 첫 사례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성폭행하고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는 최모 씨는 범행 14년8개월 만인 2018년 6월 과테말라에서 송환됐다.

과테말라와 조약 체결 후 첫 사례로 기록됐다.

계열사 자금 횡령·배임 혐의를 받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사망)의 장녀 유섬나 씨는 체포영장 발부 3년 만인 2017년 6월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송환됐다.

유씨는 양국 간 첫 범죄인 인도 사례다.

국정농단 수사 당시 이화여대 입학·학사 비리와 관련해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 씨와 공범 혐의를 받은 딸 정유라 씨는 2017년 5월 덴마크에서 강제 송환됐다.

이 역시 양국 간 첫 사례로 기록됐다.

1997년 4월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은 도주 16년 만인 2015년 9월 미국 LA에서 송환됐다.

이 사건은 2009년 9월 영화로도 만들어져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비비케이(BBK) 사건'의 당사자인 김경준 씨는 회사 공금 380억원을 빼내 미국으로 도피한 혐의를 받았다가 체포돼 2007년 11월 국내로 송환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