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화 발걸음 뚝 끊긴 강원·경기·인천 등 접경지 상권 초토화
"속절없는 매출 하락에 문 닫는 가게 속출…특별 지원 절실합니다"
[르포] 장병 외출·외박 중단 한 달…접경지 텅 빈 거리엔 한숨만 가득
군인들의 소비가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온 강원, 경기 북부, 백령도 등 전국 접경지역에 전투화 걸음이 뚝 끊어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국방부의 조치가 단호한 만큼 지역 상권은 크게 휘청거렸다.

"사단 해체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코로나19까지 연달아 터지니 지역 상인들은 말 그대로 3중고에 죽을 맛입니다.

"
'민반군반'(民半軍半)이라는 별명이 붙은 양구군을 40년 넘게 지키며 군인들을 맞아온 군인용품 점주 A씨는 23일 텅 빈 거리를 가리키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주말이면 외출·외박 나온 장병에 면회객들로 북적이던 거리는 이번 주말 텅 비어 말 그대로 '유령도시'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국방개혁으로 인한 육군 2사단 해체와 ASF 확산 방지를 위한 안보 관광 중단 등으로 부쩍 손님이 줄어든 거리에 코로나19로 전투화 발걸음마저 아예 사라지자 상인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PC방도 손님이 줄긴 마찬가지였다.

양구읍에서 20년째 장사를 이어온 박모(42)씨는 뚝 떨어진 매출에 아르바이트생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코로나19로 운영난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한 긴급 대출까지 신청했을 정도다.

7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가게에는 이날 정오까지 손님 1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박씨는 "가장 목이 좋은 곳에서 장사하던 PC방은 2주 전에 문을 닫아버렸다"며 "우리 가게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깎아줘 그나마 버티는 정도"라고 말했다.

[르포] 장병 외출·외박 중단 한 달…접경지 텅 빈 거리엔 한숨만 가득
군인 지출이 매출 80%가량을 차지하는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도 사정은 같았다.

사내파출소에서 마을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군인은 물론 행인도 드물었다.

거리에 즐비한 식당, 패스트푸드점, 당구장, 카페, 제과점, 모텔 등 대부분 상점은 텅 빈 채 손님을 기다렸다.

사창리에서 3년째 미용실을 운영 중인 임모(31)씨는 "코로나19로 군인 외출이 막히면서 매출이 80% 넘게 줄어들었다"며 "어떻게든 월세에 전기료라도 마련하려고 계속 가게를 열고 있지만 빠듯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경기도 접경지역 상인들도 경영난이 이어지고 있다.

파주시 문산읍 자유시장 인근의 한 PC방. 100여석 규모 매장 안에는 손님 1명과 직원 1명이 전부였다.

PC방 매니저인 B씨는 "지금은 원래 사람이 없는 시간이지만, 저녁이 되면 군인을 비롯한 젊은 손님들이 꽤 왔었고 주말에는 붐빌 정도였는데 코로나19 사태 뒤에는 계속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군사분계선에서 약 10km 떨어진 이 일대는 식당과 카페, 숙박업소뿐만 아니라 젊은 군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PC방들이 있어 외출, 외박을 나온 군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군의 외출·외박 통제 이후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이곳은 한산함을 넘어 우울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르포] 장병 외출·외박 중단 한 달…접경지 텅 빈 거리엔 한숨만 가득
다른 업종들도 심각한 타격에 신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접경지 상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군인용품점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적성면의 한 점주는 "평소 외출, 외박을 나왔다가 복귀 전에 (군장 용품을) 사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 끊겼다"며 "매출의 95%가 줄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근처 숙박업소 주인들도 타격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한 모텔 주인 C씨는 "젊은 군인 손님을 좀 받아보고자 작년 말에 공사도 새로 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군인 손님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근처 건설업도 중단되며 근로자들 손님도 끊겨 숙박업은 특히 굶어 죽을 지경이다"고 하소연했다.

해병대 6여단이 있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 내 음식점과 편의점 등도 군인들의 외출 등 통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출뿐 아니라 외박과 면회까지 통제된 지난달 22일부터 한 달 동안 영업 매출이 20% 넘게 줄었고, 일부 음식점은 일찍 가게 문을 닫고 아예 저녁 장사를 접었다.

백령도 내 한 중국 음식점 40대 종업원은 "통제 전에는 저녁때 외출을 나온 해병대 군인들이 짜장면 등을 먹고 갔는데 통제된 이후부터는 아예 나오질 않는다"며 "그나마 우리 가게는 배달이 좀 있어 상황이 낫지만, 고깃집 등 다른 음식점은 더 타격이 크다"고 밝혔다.

해병대 6여단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간부들이 한 달에 2차례 부대 식당이 아닌 외부 음식점을 이용했다"며 "민간인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온 이후 이마저도 중단하고 부대 식당에서만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르포] 장병 외출·외박 중단 한 달…접경지 텅 빈 거리엔 한숨만 가득
접경지역 상권이 크게 흔들리며 지역경제 타격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이 보이자 접경 시·군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양구군은 소상공인 피해 상담창구를 운영하면서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위해 업체당 최대 5천만원인 기존 대출 한도를 최대 7천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약정이자율 지원도 기존 50%에서 60%로 확대했다.

철원군도 4월 편성 예정인 추경 예산을 코로나19로 침체한 경제 살리기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도비 지원에 군비를 추가 부담해서라도 지원 대상자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인묵 양구군수는 "각종 행사 및 스포츠대회 취소, 5일장 운영 중단, 장병 외출·외박 통제 등으로 지역 상권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소상공인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지원책은 아니지만,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르포] 장병 외출·외박 중단 한 달…접경지 텅 빈 거리엔 한숨만 가득
(손현규, 최재훈, 양지웅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