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보통 이웃'의 익명 기부…고군분투 의료진에 '샌드위치ㆍ장어탕'
간호사 면허 따자마자 입대 미루고 자원봉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더 강한 '행복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대구시를 돕기 위한 뜨거운 바이러스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한 이웃들의 온정이 전국 곳곳에서 확산하고 있다.

"힘내요. 대구"…코로나19보다 더 강한 '행복 바이러스' 확산
◇ 기초수급비·저금통·세뱃돈까지…어려운 이웃들 익명 기부 줄이어
지난달 26일 서울 성북구 길음2동주민센터에는 한 남성이 찾아와 센터 직원에게 다짜고짜 봉투를 건네며 "대구 코로나19 피해 주민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봉투 안에는 현금 118만7천360원과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나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그동안 나라에서 생계비를 지원받아 생활했다.

대구 코로나19 피해 소식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준비했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6시께 충북 괴산군 청천면사무소에서는 익명의 농부가 코로나19 극복에 써달라며 슬그머니 봉투를 내밀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봉투 안에는 100만원과 함께 '코로나19로 마음고생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어려운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좋은 일에 써달라'고 적힌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충남 서산에 사는 80대 할아버지는 지난달 26일 서산시 사회복지과를 방문해 편지와 함께 5만원, 1만원 지폐와 동전 등 현금 98만6천990원이 든 비닐봉지를 놓고 돌아갔다.

A4용지 한 장 분량에 할아버지가 쓴 손편지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대구지역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할아버지는 주거지와 이름을 알려달라는 직원들의 요청을 끝내 거부했다.

지난 3일 경기 안성 죽산면사무소에는 또 다른 익명의 기부자가 방역에 써달라며 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면사무소 직원이 기부 신청서를 써달라고 요청했으나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며 손사래를 치고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써달라"고 했다.

"힘내요. 대구"…코로나19보다 더 강한 '행복 바이러스' 확산
지난달 20일 전주시청 민원실에는 익명의 한 시민이 19만5천60원이 든 돼지저금통 3개를 놓고 갔다.

고사리 같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온 한 남성도 313만원을 내놓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지난 1일 경기도 안성시보건소에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한 시민이 마스크 3만장(3천만원 상당)을 전달한 뒤 사라졌다.

광주 중학생들은 세뱃돈을 모아 대구시민을 응원했다.

광주 조대부중 강정헌(14) 군 등 중학교 5곳의 학생 7명은 지난달 29일 세뱃돈 100만원을 모아 대구적십자사에 전달했다.

유네스코(UNESCO) 레인보우 청소년 환경지킴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들 학생은 TV로 대구 상황을 접하고 "마스크라도 사서 보내자"라고 뜻을 모았다.

"힘내요. 대구"…코로나19보다 더 강한 '행복 바이러스' 확산
◇ 벌이 없는 상인들, 의료진에 도시락·장어탕
지난 2일 오전 대구 북구 칠성야시장 조리장에서는 요식업에 종사하던 자원봉사자들이 샌드위치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코로나19로 벌이가 없는 칠성야시장 상인 봉사단체인 '칠성야시장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에게 도시락 대용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핫도그 샌드위치 등 200인분을 만들어 대구의료원에 전달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칠성야시장이 지난달 21일부터 휴장해 백수 아닌 백수 신세가 됐다.

경기도 일산에서 장어식당을 운영하는 김상규(65) 씨는 코로나19와의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이 '몸보신'을 하라며 장어탕 진공포장 1천명분(500팩)을 4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과 대구의료원에 보냈다.

김 씨는 "황칠나무 진액 등 33가지 재료를 넣어 7시간을 끓여 먹기 쉽게 진공 포장에 담았다"면서 "고생하시는 의료진들이 먹고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힘내요. 대구"…코로나19보다 더 강한 '행복 바이러스' 확산
◇ 간호사 면허 따자마자 입대 미루고 자원봉사…"의미 있는 시간"
지난 2월 울산과학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정민균(24) 씨는 입대를 미루고 경북 포항에서 의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정 씨는 지난 1월 22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시행한 '제60회 간호사 국가시험'에서 합격해 간호사 면허를 취득했다.

4월 전문 의무병으로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증가하자 입대를 7월로 미루고 대한간호협회에 신청해 포항으로 배정받았다.

정 씨는 지난 2일 포항의료원에 도착해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교육을 받고 3일 첫 업무를 시작했다.

포항의료원 음압병실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체온 및 혈압 측정, 식사 배달, 병실 청소를 하고, 이들의 검체를 채취해 음성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있다.

정 씨는 "입대 전까지 친구들과 즐기면서 보내려고 했는데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가진 능력과 힘을 보탠다면 입대 전까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아버지께서는 몸조심하고 고생하겠지만 보람된 시간이 됐으면 하고,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허광무 고현실 장아름 이승민 김소연 최해민 최병길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