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시아 형식승인 취소된 선박 설비, 교체 대신 재승인 추진
업체 측 "단순 서류 착오, 보완시험 후 형식승인 갱신" 주장
해수부, 형사고발까지 해놓고는 선주 피해 막는다며 업체 요구 수용
배기량 2천cc짜리 허가받고는 1천600cc짜리 양산한 꼴인데 용인?
최근 정부로부터 선박 필수 설비 일체의 형식승인 취소처분을 받은 세계 3위 선박용 환경장비 회사 '파나시아'가 문제가 된 설비 교체 대신 재승인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해양수산부는 '단순 서류 착오'라는 파나시아 측 해명에 '부정한 방법을 동원했다'고 반박하면서도 선주와 선사의 선의의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파나시아 조치를 용인하는 입장을 취해 도마에 올랐다.

파나시아는 지난 6일 해수부로부터 선박 평형수 처리 설비 48개에 대한 형식승인 취소처분을 받았다.

평형수 처리 설비는 해양생태계 오염을 막기 위해 선박 평형수로 사용한 바닷물을 살균하는 선박 필수 장비다.

파나시아의 용량별 평형수 처리 장비 대부분이 취소 처분을 받은 것이다.

파나시아 평형수 처리 설비를 장착한 국내외 선박은 1천145척에 달한다.

해수부는 취소처분이 확정되면 해당 설비를 모두 교체하라는 보완 명령을 내린 상태다.

해당 설비를 교체할 경우 1천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측된다.

파나시아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서울행정법원이 10일 인용하면서 취소처분은 본안 소송 때까지 보류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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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파나시아의 대응이다.

파나시아는 해수부 취소 처분 내용이 알려진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2009년 형식승인 당시 제출 서류 일부가 불일치해 취소 처분됐으며 해당 모델은 2가지(PU250·PU500), 교체 대상 선박은 91척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취소 처분된 모델은 기존 형식승인 증서의 유효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완시험을 실시해 형식승인 증서를 이른 시일 안에 갱신하기로 해수부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설비 교체 대상 선박은 91척이 아닌 국내외 선박 1천145척이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해수부는 파나시아의 형식승인 취소 사유가 단순한 서류 불일치가 아닌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검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취소 처분 대상 모델 역시 2가지가 아니라 처리용량 50t에서 6천t까지 파나시아의 대부분 평형수 처리 설비가 망라됐다는 것이 해수부 설명이다.

파나시아는 2009년 평형수 처리 설비(250t 장비 기준)의 핵심 부품인 UV(자외선) 챔버 12개를 넣는 방법으로 국내 두 번째로 형식승인을 통과했지만, 이후 UV 챔버 8개를 넣어 제품을 양산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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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평형수 살균 처리 능력과 직결되는 UV 챔버 내에 들어가는 램프 개수를 의도적으로 줄여 생산단가를 낮춘 것은 물론 2009년 파나시아에 부여된 정부형식승인 결과를 믿고 설비를 구매한 선주, 선박회사를 속인 셈이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배기량 2천cc 차를 생산하겠다고 허가를 받아놓고 실제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1천600cc 차를 양산했는데 소비자는 이를 모르고 산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파나시아는 더불어 이번 조사에서 해수부에 제출한 평형수 처리 설비 도면까지 위·변조한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시아의 행위는 단순한 서류 불일치가 아닌 선박평형수 관리법을 어긴 범죄이며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것이 학계와 관련 업계 전언이다.

해수부는 취소 처분과 동시에 파나시아 법인을 형사 고발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파나시아가 문제가 된 설비를 교체 없이 설비 보완시험을 거쳐 재승인 절차를 거치려 한다는 점이다.

선박평형수 관리법에는 형식승인이 취소된 설비를 성능 검사, 검정을 거쳐 재승인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해수부는 파나시아의 계획이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선주나 선박회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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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관계자는 "관련 법이 생긴 이래 평형수 처리 설비의 형식승인이 취소되고 보완 명령이 내려진 것이 처음"이라며 "고민 끝에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파나시아의 조치 계획을 받아들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영석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는 "현행법상 형식승인이 취소된 설비를 보완하거나 재승인하는 근거는 없고 더군다나 소급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업체가 형식승인 된 설비로 교체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꼼수이며 해양수산부가 이를 허용하는 것은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설사 해수부가 장비 교체 없는 재승인을 허용하더라도 타국 항만국이 이를 문제 삼아 입항 거부나 운항 중지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있어 선주, 선박회사의 피해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양생태계 오염을 막기 위해 2004년부터 대양을 항해하는 모든 선박에 평형수 살균 처리 설비를 2020년까지 갖출 것을 의무화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2009년 형식승인을 거쳐 평형수 처리 제품을 개발한 파나시아는 장영실상, 대한민국 기술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고 세계 3위 선박용 환경장비 회사로 도약했다.

파나시아는 이번 해수부의 형식승인 취소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변호사 6명과 1개 법무법인을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