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총 "교육의 다양성 포기선언"…전교조 "늦었지만 환영"실천교육교사모임 "평준화와 배치되는 정시확대 철회"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국제고를 2025년 한꺼번에 일반고로 바꾸겠다는 정부계획이 7일 발표되자 해당 학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자교연)와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정부의 일반고 전환계획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자교연은 정부계획이 "내년 총선을 의식해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고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한 폭거"라면서 "공정성 확보와 고교서열 해소라는 미명 하에 획일적 평등으로 퇴행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이들은 "정부의 자사고 일괄폐지 정책에 끝까지 항거할 것"이라면서 "정부정책이 일관될 것이라고 믿고 투자한 데 따른 손실과 유무형 피해에 대한 책임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날 용인외대부고 정영우 교장은 연합뉴스에 "정부는 그간 단 한 번도 우리들의 입장을 물어보지 않았다"면서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경기도교육청을 대상으로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 취소소송 중인 안산동산고 조규철 교장도 "정부가 학교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획을 발표했다"면서 "표심에 따라 교육정책이 바퀴다 보니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고 비판했다.전국 외고·국제고 학부모연합회는 앞서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외고·국제고 일반고 전환 정책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이들은 성명에서 "외고·국제고는 획일적 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라면서 "학생들은 적성과 특기에 따라 공교육 내에서 외고·국제고를 선택했을 뿐인데 특혜를 받은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이어 "당사자인 학교·학생·학부모가 참여하는 어떤 공론화 과정도 없이 마치 '마녀사냥' 하듯 여론을 몰고 있다"며 "정부가 교육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 다루면서 힘의 논리로 결론을 내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교원단체들 반응은 엇갈렸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학교제도와 운영과 관련한 사안은 법률로 정하게 한 헌법을 훼손하는 처사이자, 교육의 다양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면서 "국가교육의 큰 틀과 방향은 시행령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이어 "고교학점제 도입은 차기 정권의 몫인 데다가 도입 후 학점제가 현장에 안착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상황"이라면서 "학점제 도입을 전제로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고교서열 해소는 전교조가 끊임없이 주장해온 일"이라면서 "만사지탄이지만 교육부가 고교서열화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일괄전환에 나선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그간 '수월성 교육'을 방패로 삼아 학생들을 다양한 학교로 분리해 교육해온 탓에 학생들도 계급적 분리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징후가 나타났다"며 정부계획을 환영하면서도 "(계획실현이) 차기 정부르 넘어가, 정책의 연속성이 담보될지 의구심이 남는다"고 말했다.실천교육교사모임은 정부계획을 환영하면서도 "실질적 평준화가 가능하도록 취약 지역·학교에 대한 인력·예산 등의 어퍼머티브 액션(적극적 조치), 평준화 기조와 배치되는 정시 확대 철회 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일괄전환에 더해 과학고와 영재학교 학생 선발방식을 개선하겠다는 교육부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앞으로 실효성 있는 세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입시전문가들은 전통이 오래된 자사고·외고는 일반고로 전환돼도 지역의 명문고로 명맥을 이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들 학교 주변이 '명문학군'이 되고 쏠림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하나고·대원외고·한영외고·명덕외고 등은 일반고 전환 이후 들어가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이 학교들이 있는 학군으로 이사 가려는 수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연합뉴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역량강화 방안을 발표했다.교육부는 올해 말까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는 2025년 3월부터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 이에 따라 현재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에 진학할 수 없게 된다.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일반고(49곳)의 모집 특례도 폐지한다.자사고와 외국어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는 2025년 이후에는 서울 대원외고 등 기존 외고에서는 학교 명칭을 그대로 쓰면서 특성화된 외국어 교육과정을 그대로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 선발 권한이 없어지고 다른 서울 시내 학교처럼 학생 선택에 따라 지원해 배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단 교육부는 영재학교와 특수목적고 가운데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는 2025년 이후에도 일반고로 전환하지 않고 유지한다. 정부는 자사고, 외국어고 등을 폐지하는 대신 5년간 약 2조2천억원을 투입해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교육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계획이다.유은혜 부총리는 "서열화된 고교 체제가 고등학교 교육 전반에 불공정을 만들 뿐 아니라 미래 교육에도 부합하는 형태가 아니어서 이번에 과감히 개선하기로 했다"며 "차질없이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일반고 활성화를 위해 5년간 2조원 이상 지원할 계획"이라며 "부총리가 단장을 맡는, 가칭 '고교교육 혁신 추진단'을 운영해 책임 있게 챙겨나갈 것"이라고 밝혔다.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실행 여부는 차기 정부 손에 달려…'강남 8학군' 부활 우려도사회적 합의 없이 시행령으로 교육체계 개편…반발·소송 이어질듯7일 교육부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국제고를 2025년에 일제히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향후 6년 동안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다.우선 가장 큰 문제는 이번 발표 실행 여부가 사실상 차기 정부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교육부는 이날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설립 근거가 명시돼있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대통령령)을 고쳐서 이 학교 유형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시행령은 국회 논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행정부가 단독으로 고칠 수 있다.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바뀌면 시행령은 다시 바뀔 수 있다.2022년 상반기에 들어설 차기 정권이 내세우게 될 교육정책에 따라 자사고·외고 등의 존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2025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될 예정이므로 이에 맞춰 고교 서열을 해체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고교학점제 시행 여부 역시 차기 정권의 의지에 달려있다.현 정부의 당초 계획대로 이런 내용이 여야 합의로 만드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발표됐다면 초당파적 결정으로서 유지될 수 있었겠지만,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법안은 아직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이날 발표는 자사고·외고 등 당사자와 합의를 거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정부는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들을 일방적으로 없앤다는 반발과 함께 법적 다툼에 직면할 전망이다.학교·학부모·학생들의 반발이 거셀수록 차기 정권의 부담은 가중되고, 이를 완화하고자 이들 학교를 되살릴지 검토할 가능성은 커진다.교육계에서는 "정부가 '고교입시 개선, 교육청 재지정평가, 사회적 합의 통한 고교체제 개편'이라는 자사고·외고 폐지 3단계 로드맵 공약만 제대로 지켰어도 이런 우려까지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푸념이 나온다.유은혜 교육부장관과 박백범 차관은 8월 초까지만 해도 "올해처럼 내년도 교육청 재지정평가를 한 다음에 시행령 개정 등은 사회적 합의를 거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문제로 인한 입시 불공정 문제가 불거지자 9월 당정청 협의회 때 자사고·외고·국제고 일괄 폐지안이 논의됐고, 지난달 대통령 주재 교육개혁 장관회의에서 2025년 일괄 폐지안이 공식화됐다.교육부는 이날 자사고·외고 등이 2025년 이전에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도록 지원·유도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제대로 된 합의 절차가 없었던 데다가, 현재 대입 정시모집 확대까지 추진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학교는 2025년까지 학생을 모집하면서 '버틸' 가능성이 클 전망이다.정시 비중이 늘어나면 교육과정 편성이 자유로워 수능 준비에 마음껏 힘을 쏟을 수 있는 자사고·외고가 일반고보다 유리하다.자사고·외고·국제고들은 이미 올해 고입 설명회에서 "2024년까지는 존속이 확정됐고, 정시까지 늘어나면 우리 학교가 더 유리해진다"며 학생 모집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대다수 자사고·외고가 2025년까지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 때 이들 학교의 폐지를 두고 다시 혼란이 빚어질 전망이다.자사고·외고들이 '정치력'을 발휘해 자사고·외고 존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올해 7월 상산고가 지정취소 위기에 몰리자 상산고를 지역구에 둔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 151명이 교육부에 부동의 요구서를 전달한 바 있다.현재 서울 곳곳에 분포돼있는 자사고·외고가 일거에 사라지면 '강남8학군' 등 이른바 '교육 특구' 선호 현상이 부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한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현재 정시 확대까지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수능에 대비에 노하우가 있는 소위 '명문 일반고'를 보내려는 학부모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투입될 수천억원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아직 물음표다.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에게 의뢰받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만 재정지원금이 7천700억원 넘게 들어갈 것으로 분석됐다.외고·국제고까지 고려하면 소요 예산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이날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가 없어지고 고교학점제가 도입될 것에 대비해 일반고의 교육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기획재정부는 인구 감소에 맞춰 교원은 물론 교육 예산을 점차 감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부처간 정책 조율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예산 당국과 협조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교육부가 고교 무상교육처럼 시·도 교육청에 예산 부담을 일부 지게 하고, 비정규직 강사로 교원을 늘리는 일도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