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팀 윤희동 경위 인터뷰
범죄조직 은닉 111억 몰수보전·국내계좌 지급정지…피해자 회복 지원

10여년간 활개 친 사이버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고 피해자들의 민사소송까지 돕고 있는 경찰관이 있어 화제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는 주인공은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팀 윤희동(46) 경위다.

윤 경위의 지원을 받아 피해자들이 진행 중이거나 이미 판결이 난 민사소송 건수만 26건이며, 현재까지 승소금액은 17억원에 달한다.

윤 경위는 지난 8일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범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호의호식하는데 피해자들은 가정파탄에, 빚에 시달리는 상황은 막아야겠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그것이 경찰관으로 갖고 있는 나의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범죄자 호의호식 막아야"…피해자들 민사소송 돕는 경찰관
◇ 스팸문자 한통에서 계좌 지급정지까지…"아무도 못 말려"
윤 경위가 속한 수사팀은 지난 6월 1천600억원 규모 해외 사이버 범죄조직의 '대부'격인 이모(54)씨를 비롯해 조직원 24명을 검거하고, 이씨의 국내외 재산 111억원 상당을 몰수보전 및 압수하는 성과를 냈다.

다만 주범 이씨는 현재 태국의 한 교도소에 현지 사기 사건으로 수감 중이며, 재판이 끝나는 대로 국내로 송환될 예정이다.

이씨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는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2016년 다른 경찰서에서 근무할 당시 우연히 받은 스팸 문자 한 통을 수상히 여긴 윤 경위는 문자 속 링크를 추적해 2년여의 수사 끝에 태국 방콕과 베트남 호찌민 등에 활동 본거지를 둔 이씨 조직을 일망타진하게 됐다.

선물·옵션 투자를 빙자한 사기 사이트와 외국 복권 구매 대행 사기 사이트 등을 10년 이상 운영하며 피해자 약 6천500명(경찰 추산)을 낳은 이씨 조직의 실체가 밝혀졌다.

수사팀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 312명을 실제로 확보했으며, 범죄수익금에 해당하는 부동산과 현금 등 이씨의 국내외 재산 111억원 상당을 몰수보전 조치했다.

또 그 중 국내 예금 계좌 약 46억원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했다.

계좌 지급정지가 바로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서라도 피해 금액을 되돌려받을 수 있게 만든 결정적 조치였다.

지난해 3월 이씨 가족의 국내 집을 찾아가 통장 13개를 압수하던 날 윤 경위는 새벽에 귀가해 눈도 제대로 못 붙이고 바로 출근하자마자 은행에 전화부터 걸었다.

일반적으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같은 경우 금융기관에서 계좌 지급정지를 쉽게 요청할 수 있으나, 사기 인터넷 사이트의 운영자, 그것도 주범이 아닌 주범 가족의 계좌에까지 이런 조치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자칫 상대방이 역으로 소송을 낼 경우 지급정지에 따른 피해를 윤 경위 본인이 물어내야 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대해 윤 경위는 "해당 계좌의 돈이 범죄 피의자의 것이라는 증거를 들어 금융기관을 설득했다"면서 "거짓말처럼 30분 뒤 이씨 가족들이 은행을 찾아 수십억원을 인출하려고 했지만, 다행히 계좌 지급정지가 이미 이뤄진 이후였다"고 설명했다.

동료들은 그를 두고 "아무도 못 말린다", "일 중독 수준"이라고 평했다.

이씨 조직이 검거됐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지난 6월 윤 경위의 사무실 전화기에는 피해자들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만 700통이 찍혀 있었다.

이를 응대하느라 사무실이 마비될 정도였다.

"범죄자 호의호식 막아야"…피해자들 민사소송 돕는 경찰관
◇ "피의자 검거가 끝 아냐"…피해 회복 적극 지원
이러한 그의 집념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윤 경위는 1999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이버수사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사이버 범죄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수사관의 역할이 피의자 검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단순 인터넷 사기거래는 물론이고 보이스피싱과 메신저피싱,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는 이른바 '몸캠' 피싱까지, 사기를 당한 이후 피해자들의 삶은 무너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도 봤다.

특히 이번 사건 같은 경우, 이씨 가족의 집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달러 뭉치와 이씨가 거주했던 태국의 호화 콘도 등을 보고는 더욱 다짐했다.

이에 윤 경위는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이후에도 피해자들이 돈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있다.

이 사건으로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민사소송 건수는 총 26건(69억원)이다.

윤 경위는 소송에 필요한 법원의 사실조회 회신 등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실제 피해자 중 한 명으로 광주지역에 거주하는 A(59)씨도 최근 민사 소송을 통해 피해 금액 1천만원을 돌려받았다.

A씨는 선물투자로 알고 거래했던 사이트는 간혹 서버가 불안정하긴 했어도 가짜 사이트라고 의심하기는 어려웠는데, 돈을 뜯기고 나서야 사기인 걸 알게 됐다.

인터넷상 화면에서는 마치 선물거래가 이뤄진 것처럼 보이게 하고는, 뒤로는 피해자들의 돈을 가로채는 수법이었다.

A씨는 경찰에 피해 내용을 알리면서도 사이버 사기 범죄자들이 검거돼봤자 수익금을 다 빼돌린 뒤일 거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한 했었다.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변호사도 없이 혼자 싸웠는데 승소했다"면서 "수사관님의 빠른 조치 덕에 통장이 다행히 그대로 묶여 있어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서 "수사관님이 자기 일처럼 사건을 처리해준 게 너무 고마워서 사무실로 통닭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한사코 사양하더라"고 덧붙였다.

"범죄자 호의호식 막아야"…피해자들 민사소송 돕는 경찰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