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회의 구상 이어 자문기구 출범…행정처·고등부장 폐지 추진
13년만에 강제징용 배상 확정…'성인지 감수성' 확립 등 판결 눈길
김명수 체제 2년, 사법개혁 다각추진…"가시적 성과는 부족"
김명수 대법원장이 26일로 취임 2년을 맞았다.

법조계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혼란에 휩싸인 사법부를 추스르고 사법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26일 땅에 떨어진 사법 신뢰를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떠안고 임기를 시작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법관들이 줄줄이 피고인석에 서면서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관들이 부당하게 일선 재판에 관여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 본연의 기능인 재판과 사법행정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을 법원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의 첫 번째 단계로 재판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했다.

상고심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제왕적이라는 지적을 낳았던 대법원장 권한을 대폭 줄이는 것도 김 대법원장의 정책 구상이었다.

김명수 사법부가 2년차로 접어들면서 이 같은 구상은 시책으로 녹아들었다.

김 대법원장은 외부인사가 포함된 수평적 합의제 의사결정기구인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고, 법원행정처를 집행기관인 '법원사무처'로 개편하는 내용이 담긴 법률 개정 의견을 제시했다.

권한 남용 논란을 빚은 법원행정처 기능을 실무적 수준으로 축소하고 주된 권한을 사법행정회의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법관의 꽃'으로 불리면서도 법관의 관료화 및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온 고법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담겼다.

실제로 대법원은 올해 1월 정기인사에서 고법 부장판사를 새로 보임하지 않았다.

법원행정처에 상근하는 법관을 두지 않는 이른바 '행정처 비(非)법관화'도 추진돼 판사들이 맡아온 법원행정처 내 몇몇 보직들이 비법관 공무원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최근 김 대법원장은 내년 정기 인사 때 법원장 추천제를 더욱 확대해 승진 인사권을 비롯한 대법원장의 권한을 내려놓는 작업도 이어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명수 체제 2년, 사법개혁 다각추진…"가시적 성과는 부족"
이런 가운데 사법개혁의 가시적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지난 23일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는 법원행정처의 기능이 여전히 강대하며, 조만간 마련하겠다던 개혁기구는 1년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개혁 구상이 제시됐고, 일부 도입 사례도 나왔지만 사법부의 전반적인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이는 김명수 사법부의 핵심적인 사법개혁 방안들이 결국 입법을 통해 현실화하는 것인데 국회에서 논의가 무르익지 않은 데 기인한 면도 있다.

새로운 사법행정 기구가 입법을 통해 도입되기 전이라도 '열린 사법행정'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에서 보완책이 나오기도 했다.

일례로 김 대법원장이 취임 2년을 맞은 26일 '사법행정자문회의'가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자문회의는 현직 법관과 외부전문가를 포함해 10인으로 구성된 사법행정 전담 상설자문기구로, 의장은 대법원장이 맡는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자문위원들을 위촉하면서 자문회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향후 자문회의는 미래 사법을 위한 거시적 문제를 비롯해 판사 보직 인사 등 세부 안건까지 두루 논의하기로 해 향후 활동이 주목된다.

반면 법률이 아닌 대법원 규칙으로 만든 자문회의라는 조직이 기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 대법원장 체제 2년간 과거보다 여성 대법관이 늘었고, 이른바 '서오정'(서울대·50대·남자) 공식이 깨지며 인적 구성이 다양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따라 균형적 판결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주요 판결을 살펴보면 지난해 10월 선고된 강제징용 재상고심 전원합의체 확정판결이 있다.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는 이 판결은 소송 제기 13년 8개월 만에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2012년 대법원 판단을 확정하면서 외교적 파장을 낳았다.

또 이달 초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유죄를 확정한 판결도 대법원의 확고한 법리로 자리 잡은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원칙이라는 차원에서 관심을 끌었다.

안 전 지사의 범행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물적 증거는 없었지만, 성범죄 피해자 및 피해 사실을 전해 들은 제삼자로부터 확보한 진술만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