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으로 발생한 기업 분쟁에서 당사자끼리 합의한 결과(조정)에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는 싱가포르 협약이 지난달 체결되면서 조정을 둘러싼 대응책 마련이 법조계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싱가포르 협약 가입국은 한국과 미국 중국 인도 등 46개국에 이른다. 조정은 판사나 중재인 등 제3자의 판정 없이 분쟁 당사자가 직접 해법을 찾는 방식으로 비용과 시간이 재판이나 중재보다 크게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싱가포르 협약' 한·미·중 등 46개국 가입…국회 비준 거쳐야 효력
전 세계 상거래분쟁 해결 규정에 관여하는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아티타 코민드라 아·태지역사무소장은 지난 20일 서울국제중재페스티벌에서 “싱가포르 협정에 서명한 나라들은 세계 인구의 절반을 대표할 정도로 영향이 크다”며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가입국의 준비 과정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민드라 소장은 “조정은 재판이나 중재와 달리 빠르고 값싸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 협약이 한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피신청 규모(약 6조7500억원)가 세계 최대 수준이며 대외무역이 많은 한국 산업 구조 특성상 국내 기업들이 중재 사건의 당사자로 다투는 경우도 많다.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들이 당사자인 국제중재사건은 국제상업회의소(ICC)에서 54건으로 일본(31건)과 인도(47건)를 앞섰으며 중국(59건)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싱가포르 협약 가입을 계기로 조정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유다.

중재업계는 조정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법원 재판의 10분의 1 수준으로 평가한다. 이르면 한두 달 만에도 결론이 난다. 싱가포르 협정은 합의 결과를 서로 파기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분쟁 해결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싱가포르 협약이 효과를 내려면 3개 이상의 가입국이 자국에서 의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 한국 역시 기업들이 협약 적용을 받으려면 국회 비준을 통과시켜야 한다.

싱가포르 협약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재업계 관계자는 “분쟁 기업들이 서로 짜고 ‘돈세탁’을 시도할 수도 있고, 각국이 의회를 거치면서 어떻게 제도를 변화시킬지 모른다”며 “우리도 법원이 적용하는 민사조정법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국내 기업에 가장 유리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