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딸에게 시험 문제를 알려주고 전교 1등으로 둔갑시킨 서울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씨(52)가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검찰 구형량인 징역 7년의 절반에 달하는 중형이다. “딸들이 공부 열심히 했을 뿐”이라며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해 온 현 씨는 선고 직후 항소의 뜻을 밝혔다.
'쌍둥이 딸 문제유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에 징역 3년6개월 실형 선고 (사진=연합뉴스)
'쌍둥이 딸 문제유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에 징역 3년6개월 실형 선고 (사진=연합뉴스)
◆100등 밖이 전교 1등으로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23일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 씨의 업무방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현 씨는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작년 7월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정기고사 총 5회의 문제와 정답을 빼내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딸들에게 알려줘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1학년 1학기에 전교 100등 밖이었던 쌍둥이 중 언니는 2학기에 5등, 2학년 1학기에 인문계 1등이 됐고, 50등 밖이었던 동생은 2등, 자연계 1등이 됐다.

이 날 재판부는 “쌍둥이 자매가 유출된 답을 암기해 성적이 대폭 향상된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재판부는 먼저 현 씨가 당시 교무부장으로 정기고사 출제서류의 결재권자였다고 언급하며 “현 씨 2층 교무실 자리 바로 뒤 금고에 출제서류가 보관됐고 현 씨가 금고 비밀번호도 알았다”고 밝혔다. 또 현 씨가 정기고사를 앞두고 의심스러운 행적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1학년 2학기와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혼자 주말 출근과 초과근무를 한 점 등을 들면서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금고를 열어 답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쌍둥이 딸의 내신 성적이 급상승하는 동안 모의고사에서 성적 향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 “지문을 독해하는 국어나 평소 실력이 중요한 수학 등 과목을 보면 정기고사는 교내 최상위권인데 모의고사는 성적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시험지 위에 적어놓은 ‘깨알정답’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쌍둥이들의 주장처럼 채점을 위해 메모한 것이 아니라 정답을 미리 알고 적어놓은 것이라고 봤다. 쌍둥이 중 동생은 제대로 된 풀이과정도 없이 고난도 문제의 답을 적기도 했다. 재판부는 “오로지 암산을 통해 물리1 과목을 만점 받을 수 있는 선천적 천재나 상식 범위를 넘는 사람으로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입시 비리에 대한 사법부 엄단”

현 씨가 검찰 구형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거운 형을 받은 것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입시 비리를 엄단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 표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재판부는 “숙명여고 뿐아니라 다른 학교도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됐다”며 “다른 교사들의 사기마저 떨어졌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작년 7월 이 사건이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사자 교육부는 부모가 교사로 재직하는 학교에 자녀를 배치하지 않는 ‘상피제’까지 도입했다.

1심 재판부는 현 씨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반성이 없는 점을 들어 “이에 상응하는 무거운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질타했다. 현 씨는 피고인신문에서 “두 딸이 열심히 노력해 성적이 오른 것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쌍둥이도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다른 학부모와 학생들의 시기 어린 모함을 받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 날 현 씨는 선고 직후 말없이 법정을 빠져나갔다. 선고 후 기자들과 만난 현 씨측 변호인은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 씨는 지난해 12월 숙명여고에서 파면됐다. 이에 앞서 자퇴서를 제출했던 쌍둥이 자매는 11월에 퇴학 처리됐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