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심사 전날 고교 2년 선배 변호사 새로 선임
기각사유에 '사고땐 SK 책임' 계약내용 포함…"애경에 불리한 정황" 반론도
애경 前대표 영장기각 논란…영장판사 동문 변호인 긴급투입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안용찬(60) 애경산업 전 대표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직전에 영장전담 판사의 고교 동문을 변호인으로 긴급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검찰 일각에서는 "변호인을 새로 선임하는 순간부터 이미 영장 발부는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왔다.

해묵은 전관예우 논란과 함께 영장판사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책임계약을 영장 기각 사유로 든 점을 두고도 법조계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2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안 전 대표는 지난달 26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심문 기일과 담당 영장판사가 정해지자 A변호사를 선임했다.

A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선임계를 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장을 지낸 A변호사는 올해 2월 정기인사 때 법복을 벗은 'A급' 전관이다.

특히 A변호사가 안 전 대표의 영장 재판을 맡은 송경호 부장판사의 고교 2년 선배라는 점이 눈에 띈다.

송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안 전 대표는 물론 함께 청구된 애경산업 임직원 등 4명의 구속영장을 전부 기각했다.

법조계에서는 송 부장판사가 영장 재판을 스스로 회피하고 다른 판사가 맡았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사건을 회피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와 별개로 전관예우 근절 차원에서 형사사건에 한해 재판부와 지연·학연 등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하고 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영장 재판의 경우 전산 배당 대신 같은 방에 근무하는 전담판사들끼리 논의해 나눠 맡는 식으로 배당하기 때문에 사건을 그냥 동료에게 넘기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회피 절차가 일반 형사 재판보다 더 간단하다는 얘기다.
애경 前대표 영장기각 논란…영장판사 동문 변호인 긴급투입
논란은 영장 기각 사유의 타당성으로까지 번졌다.

송 부장판사는 안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피의자 회사와 원료물질공급업체와의 관계 및 관련 계약 내용'을 들었다.

애경산업은 2002년 10월 '가습기 메이트' 제조업체인 SK케미칼과 제조물 책임계약을 맺었다.

'SK케미칼이 제공한 상품 원액의 결함으로 제삼자의 생명, 신체, 재산에 손해를 준 사고가 발생하면, SK케미칼이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내용이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두 회사 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정한 계약을,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근거로 삼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히려 애경산업이 '가습기 메이트' 원료물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어서 안 전 대표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한 검찰에 더 유리한 증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영장 기각 사유로 손해배상 계약을 거론한 것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성립한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 책임의 경중을 고려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제조물 책임계약은 범죄성립 여부를 다투는 단계에서는 애경산업에 불리하지만 이후 양형에서는 유리한 정황"이라며 "피고인의 예상되는 형량에 따라 도주 우려의 정도를 달리 판단할 수 있는 만큼 책임계약을 그 근거로 제시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SK케미칼의 형사 책임을 따지게 되면 제조물 책임계약을 어떻게 반영할지 벌써부터 주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지난달 25일 소환 조사한 김철(59) SK케미칼 사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 중이다.

한 차례 기각된 안 전 대표의 영장도 재청구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