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술품 경매시장에 사상 최대 규모인 2194억원의 ‘뭉칫돈’이 몰린 가운데 새해 국내 시장의 가늠자 역할을 할 첫 경매가 열린다.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은 오는 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 경매장에서 김환기를 비롯해 박수근, 데이미언 허스트 등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과 고서화, 도자기 등 총 164점(120억원)의 경매를 진행한다. 경기 하강기에 미술품 같은 안전자산에 관심을 두는 컬렉터가 늘어나는 만큼 작년의 훈풍이 이어질지 주목된다.K옥션은 국내 미술시장 대장주 김환기의 추상과 반추상 작품 일곱 점(추정가 51억원)을 고루 내놓고 ‘환기 마니아’를 끌어들일 계획이다. 김환기가 1970년 뉴욕 시절 제작한 전면 점화 ‘14-VII-70 #180’은 추정가 18억~30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점화 작품 가운데 매우 드물게 분홍색 색점으로 채워져 있다. K옥션은 “뉴욕 도심 속 마천루의 창을 바라보며 진달래 꽃잎이 흩날리던 고국의 봄날을 떠올렸고, 수천 개의 점을 찍어 화폭을 물들인 수작”이라며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10주기 회고전 이후 한 번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다가 이번 경매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국민화가 박수근이 작고하기 한 해 전인 1964년 그린 ‘줄넘기하는 소녀들’도 경매장에 나온다. 말년엔 한쪽 눈 실명과 백내장으로 전체 화면을 약간 흐릿하게 묘사했지만 옛 동네 골목길의 순수한 소녀들 일상을 화강암 같은 독특한 질감과 조형성으로 풀어냈다. 추정가는 3억3000만~5억원.추상화가 이우환, 유영국, 윤형근, 김창열 등 대가는 물론 윤병락, 이동기, 에바 앨머슨, 카우스 등 요즘 인기 작가들의 작품도 새 주인을 찾는다.고미술 부문에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임금 신종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진 기물 8종(팔사품)을 그린 팔사품도(八賜品圖), 조선후기 통영에서 진행된 경상·충청·전라 삼도 수군의 합동 군사훈련 장면을 풀어낸 수군조련도(水軍操鍊圖) 등이 눈에 띈다. 또 10캐럿 다이아몬드 티아라, 다이아몬드 테니스 목걸이와 팔찌, 에메랄드 3캐럿 블루밍 반지도 나온다. 경매 출품작은 오는 23일까지 K옥션 전시장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2019년에도 홍콩을 비롯해 미국 유럽 시장을 겨냥한 미술계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화랑업계는 ‘아트바젤 홍콩’ 등 굵직한 아트페어에 잇달아 참가할 예정이고, 서울옥션은 홍콩 경매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비롯해 추상화가 이우환과 이강소, 한지조각가 전광영, 설치작가 양혜규 등 20여 명의 작품이 해외 유명 미술관과 화랑에서 전시되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영국 최대 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런던에서 큰 판을 벌인다. 오는 10월17일 영국 최대 미술관 테이트모던에서 개막하는 백남준 회고전은 국내외 무대에서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간간이 열리던 작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1960~1990년 시기별 비디오아트는 물론 대형 설치작품, 추모곡, 사진 작업, 퍼포먼스 영상이 대거 관람객을 맞는다.현대 음악가 샬럿 무어먼과 존 케이지, 무용가 머스 커닝햄, 화가 요제프 보이스 등과의 다양한 예술 협력도 조명한다. 2014년 미국 유명 화랑 가고시안갤러리가 백남준을 전속작가로 끌어들인 이후 최대 규모의 전시회여서 국제 미술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위작 논란으로 한때 곤욕을 치른 이우환은 유럽 현대미술의 1번지 프랑스 화단을 ‘노크’한다. 파리 퐁피두센터 분관 1호 퐁피두메츠에서 다음달 27일부터 9월30일까지 펼치는 개인전에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 사이에 작업한 회화와 조형물 등 50여 점을 골라 내보인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특별전 이후 최대 규모로, 시대별 대표작이 총망라된다.‘단색화의 거목’ 윤형근과 전방위 아티스트 이강소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건너간다. 윤형근 회고전은 5월11일부터 11월24일까지 포르투니미술관에서 열린다. 평생 단색화에 몰두하며 1970~1980년대 시대적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생각을 그림으로 승화한 작품 50여 점을 걸어 한국 추상미학의 독창성을 보여준다.5월7일부터 팔라초카보토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이강소의 개인전은 최근 국제 미술계가 관심을 보이는 한국 행위미술의 본질을 탐구하고 재조명하는 성격의 전시회여서 더 주목된다.지난해 국내 작가로는 처음 미국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의 초대를 받은 ‘한지 조각의 거장’ 전광영은 독일 백앤에글링화랑(5월)과 미국 오리건주립대 조던슈니처미술관(8월)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열고,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설치미술가 양혜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안토니타피에스미술관(5월)의 초대전에 신작을 내보일 예정이다.한국 미술, 중국 진출 기지개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한동안 뜸하던 한국 미술의 대륙 진출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국 전통 단색화와 추상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회는 3월2일까지 상하이 사립 바오룽(寶龍)미술관에 마련됐다. ‘김환기와 단색화’를 테마로 한 이 전시회에는 김환기를 비롯해 정창섭 권영우 정상화 박서보 이우환 하종현 등 1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이 나와 있다.경매회사와 화랑들도 한국 미술의 ‘세컨드 마켓’으로 떠오른 홍콩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옥션은 올해 3월, 5월, 10월, 11월 네 차례 홍콩 경매행사를 열어 김환기를 비롯해 백남준 이중섭 천경자 황재형 등 유명 작가의 수작들을 내보일 예정이다. 서울옥션은 올해 홍콩 경매낙찰액 목표를 작년(663억원)보다 20% 정도 늘려 잡았다.국제갤러리를 비롯해 학고재갤러리 PKM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리안갤러리 등 여덟 개 화랑은 3월29일부터 31일까지 홍콩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아트바젤 홍콩에 참가해 해외 유명 화랑들과 판매 경쟁을 벌인다. 청작화랑, 갤러리 미즈 등 군소 화랑 100여 곳도 ‘아트센트럴’ ‘하버아트페어’ 등에 참가해 ‘미술한류’에 불을 지핀다.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김환기 그림으로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이 자동차 수십 대를 수출한 효과와 맞먹는다”며 “화랑을 통한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올해 국내 미술 경매시장에 유입된 자금이 사상 처음으로 2000억원을 돌파했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1998년 경매를 시작한 이후 20년 만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미술경기 회복세와 ‘김환기 열풍’에 힘입어 국내 경매시장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25일 미술계에 따르면 양대 경매회사 서울옥션과 K옥션의 올해 낙찰총액 1985억원(서울옥션 1266억원, K옥션 719억원)에 10개 군소 경매업체의 실적 약 100억원을 더하면 시장에 공개적으로 유입된 자금만 2085억원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서울 청담동 인사동 등 화랑가의 장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유독 경매시장에만 이처럼 자금이 몰리는 것은 미술품이 투자 대상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기존 컬렉터 외에 일반인들까지 투자 대열에 합류해 작품을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 투자자들이 김환기의 1960~1970년대 점묘화 작품뿐 아니라 초기작도 싹쓸이한 게 시장 확대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올해 경매시장은 김환기 열풍 지속, 해외 미술품과 고미술품 관심 증가 등으로 처음 2000억원의 벽을 뚫었다”며 “미국과 유럽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어 일부 투자자들은 그림을 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서울옥션 낙찰액 1260억원…사상 최대국내 최대 경매회사 서울옥션에는 올 들어 1260억원대의 자금이 몰려 경매시장의 열기를 이끌었다. 2005년 경매회사 설립 후 처음 낙찰총액 1078억원을 기록한 뒤 3년 만에 다시 1000억원 선을 넘어 1300억원까지 바짝 다가섰다. 특히 홍콩 경매의 매출이 약 663억원을 기록하며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해 해외 시장 매출 비중이 커졌다.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 40%대와 비교하면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여섯 번의 오프라인과 54회 온라인 경매를 한 K옥션에도 700억원대 자금이 몰렸다.국내외 경매시장에서 김환기의 작품은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술품 거래를 사실상 주도했다. 서울옥션과 K옥션은 김환기 작품 60점을 팔아 37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낙찰총액의 17%가 넘는 액수다. 김환기의 빨간색 점화 ‘3-II-72 #220’은 지난 6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30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이중섭, 천경자 작품도 신고가를 경신하며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지난 3월 경매에서 이중섭의 ‘소’가 시작가 18억원에서 출발해 치열한 경합 끝에 47억원을 부른 전화 응찰자에게 최종 낙찰됐다. 천경자의 작품 ‘초원 II’도 20억원에 팔려 작가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해외·고미술 약진…온라인 경매 주춤외국 작가의 작품에도 강한 매수세가 유입됐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여성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작품 ‘콰란타니아(Quarantania)’가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95억원에 팔렸고, 영국 작가 세실리 브라운의 ‘피자마 게임’(56억원),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아타셰 케이스가 있는 정물화’(50억원)도 초고가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고서화, 서예, 공예품, 도자기 등 고미술품 거래 역시 시장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서울옥션의 올해 경매에서는 고미술품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77% 늘어난 184억5000만원어치 팔려나갔다. 5월 K옥션 경매에서는 고미술품 69점 중 61점이 팔려 낙찰률 88%(낙찰총액 17억1670만원)라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한 점당 1000만원 미만 중저가 미술품 거래는 주춤했다. 서울옥션과 K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거래된 그림 판매액은 작년(250억원)보다 10% 정도 줄어든 223억원에 불과했다.내년 경매시장 2500억원 전망시장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유명 화가의 그림에 투자금이 몰릴 것으로 봤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미국과 유럽, 홍콩 미술시장의 호황이 지속되면서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서울 중심의 미술품 수요가 지방 대도시까지 확산되고 있어 내년 시장은 2500억원에 바짝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반면 일부 비관론자들은 “미술 경기와 연관 산업인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그림값이 폭락할 가능성은 작더라도 쉽게 치고 올라갈 분위기는 아니다”며 신중한 투자를 당부했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