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부탁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안일한 인식 반성"
前공정위 부위원장 "채용 강요, 기업에 부담되는 줄 몰랐다"
막강한 규제 권한을 이용해 대기업에 퇴직 간부들을 재취업시키도록 강요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야 기업들이 부담에 마지못해 채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전·현직 공정위 간부들의 속행 공판에서 이렇게 밝혔다.

김 전 부위원장은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피고인이지만 이날은 증인 신분으로 증언대에 섰다.

증인 신문에서 검찰은 피해 기업 관계자들이 "기업 조사권을 가진 공정위는 두려운 존재라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불이익을 줄 수 있었다", "공정위가 억지로 퇴직예정자를 채용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술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를 들은 김 전 부위원장은 "재직할 때는 기업이 수용하기 어려우면 저희 부탁을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기업도 채용 의사가 전혀 없는 건 아닐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며 "조사받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 과정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제가 너무 안일하게 인식했다고 생각했다"며 "깊이 반성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후회의 뜻을 내비쳤다.

그는 '증인도 공정위가 관여해 퇴직자를 재취업하도록 하는 것이 떳떳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어떠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또 "공정위의 지원으로 퇴직자들이 여러 기업에 재취업했지만 기업의 구체적 필요에 의한 취업이 아니라 실제 역할이 없었고 출근하지도 않고 억대 연봉을 받기도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그렇게 볼 수 있겠다"고 힘없이 대답했다.
前공정위 부위원장 "채용 강요, 기업에 부담되는 줄 몰랐다"
김 전 부위원장은 자신이 재임하던 기간에 기존에 재취업한 퇴직자들의 계약 기간 제한을 설정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문제' 해결을 천명한 대통령 담화에 대응할 방안을 검토한 문건 등을 생산한 사실을 시인했다.

계약 기간이 제한되자 반발하는 기존 퇴직자에게 직접 연락해 (용퇴를)설득한 적도 있다고 인정했다.

또 이와 같은 퇴직자 재취업 과정이 정재찬·노대래 전 공정위원장 등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정 전 위원장 등이 '자신들은 모르는 일로, 부위원장과 운영지원과장 등이 한 일'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로 위원장에게 보고가 이뤄진 사실을 직접 보거나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정통 공정위 출신 관료인 김 전 부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퇴직자의 재취업 관행이 시작됐다고 기억을 되새기며 당시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검찰 조사 당시 "공정위 차원에서 퇴직자의 취업을 관리하는 것은 직원들 사이에서 공지의 사실"이라 진술한 것을 두고 정재찬 전 위원장의 변호인 등이 집중적으로 추궁하자 "표현이 조금 극단적이었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