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피동형이 자연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피동사를 취하는 동사가 제한돼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어에서는 타동사를 ‘be동사+과거분사’ 형태로 바꿔 피동을 만드는 데 비해, 우리말에서는 접미사 ‘이, 히, 리, 기’를 붙이는 게 전형적 방법이다. 이때 피동접미사를 붙일 수 있는 동사가 한정돼 있다는 뜻이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발생하다'가 '~발생되다'보다 낫죠
‘-하다’형 자동사를 무심코 ‘-되다’로 써

특히 부족한 우리말 동사를 보완하는 ‘-하다’계, 즉 ‘공부하다, 생각하다’ 같은 무수한 동사가 피동사(‘이, 히, 리, 기’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하다’계 동사 중 타동사는 접미사 ‘-되다’를 붙여 피동을 만든다. 목적어 유무에 따라 ‘~을 개발하다/~이 개발되다’ 식으로 능동과 피동을 구별한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다’ 자동사까지 ‘-되다’로 쓰는 오류가 많다. ‘앨리스토리 커피볶는집은 이렇게 탄생됐다.’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사연을 계기로 탄생됐다고 한다.’ 이런 문구가 흔하지만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자동사란 스스로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누가(또는 무엇이) 태어났다면 ‘탄생했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접미사 ‘-되다’는 피동의 뜻을 더하는 구실을 한다. 그러니 이를 ‘탄생됐다’라고 할 이유도 없고, 자연스럽지도 않다. 무심코 남발하는 ‘-되다’ 표현이 우리말을 비트는 결과를 초래한다.

‘발생하다’도 자동사다. ‘사건이 발생하다’ ‘화재가 발생하다’라고 쓰면 충분하다. 하지만 실제론 ‘사건이 발생되다’ ‘~서 발생된 화재’ 식으로도 많이 쓴다. 물론 문법적으로는 다 허용하는 표현이다. 가령 ‘공사장에서 발생된 소음으로 인해~’ 같은 표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도 ‘공사장에서 발생한 소음’으로 쓰는 게 더 자연스럽고 우리말답다. 미세한 어감 차이를 다투는 문학작품이 아니라면 굳이 ‘-되다’를 붙일 필요가 없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발생하다'가 '~발생되다'보다 낫죠
습관적으로 쓰는 피동이 우리말 왜곡해

그런 사례는 너무도 많다. “코스피지수가 1년10개월여 만에 2000선이 붕괴됐다.” “어느 땐가 거품이 폭발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해 논란이 된 금융계 채용비리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두 ‘붕괴했다’ ‘폭발하는’ ‘재발하지’ 등 ‘-하다’ 동사로 쓰는 게 더 편하다.

그런 점에서 “열차가 곧 도착됩니다” 같은 표현은 어떨까? “서울행 열차가 잠시 후에 출발됩니다.” 이런 말도 흔히 쓰인다. ‘출발하다/도착하다’는 자동사이므로 그대로 쓰면 될 말이다. 이를 자꾸 ‘-되다’로 쓰는 까닭은 주어가 무정체이니 피동형으로 쓰는 게 낫겠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발전하다, 발달하다, 진화하다, 해당하다, 발병하다, 부합하다, 유래하다, 불발하다, 재발하다, 발발하다, 성장하다, 번영하다, 약진하다, 융성하다, 전진하다.’ 이들은 모두 ‘-하다’형으로 쓰는 자동사다. ‘발전하다’를 ‘발전되다’로 , ‘해당하다’를 ‘해당되다’ 식으로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런 관점을 다음 문장에 적용해 보자. “국민의 절대다수가 근로자와 그 가족인 점을 감안하면, ‘장시간 근로’와 ‘선진국’이라는 개념 또한 양립될 수 없다.” 이때 모국어 화자라면 따로 배우지 않아도 ‘A와 B가 양립하다’를 기본문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어법적으로 ‘-되다’를 써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다’로 쓸 때 훨씬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글쓰기에서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화자가 직관적으로 볼 때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게 가장 좋은 표현이다.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