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누명을 벗고 국가로부터 받는 형사보상금이나 민사소송 시 패소한 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소송 비용 등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중 이자율에 비해 법정의 지연이자가 과도하게 높아 소송 남용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정의 경제’가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얘기다.
현실과 따로 노는 '법정의 경제학'
◆사업까지 망했는데 보상금은 쥐꼬리

건축업을 하던 A씨(50)는 강제 추행 등 성범죄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년 넘도록 구치소에 갇혔던 A씨는 항소심에서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그동안 그의 사업은 막대한 위약금 소송과 분쟁에 휘말려 재기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가족의 삶도 피폐해졌다. 수천만원의 변호사비용까지 내고 나니 그에게 남은 건 없었다. 형사보상이라도 받으려는 A씨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보상이 3000만원 전후에 불과할 것이란 변호사 설명에 다시 좌절했다.

충청도 지역에서 4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한 B씨도 강간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가 1년 뒤 누명을 벗었다. 그는 공직을 잃었지만 무죄 이후에도 공직에 복귀할 순 없었다. B씨는 “몇천만원으로 잃어버린 시간과 명예를 어떻게 보상받겠느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A씨나 B씨처럼 억울한 누명을 벗더라도 한국의 형사보상체계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실질적 손해에 비해 턱없이 적다. 형사보상법에 따르면 억울하게 기소당해 미결 상태로 구금됐다가 무죄를 받아 풀려나면 구금 일수에 따라 형사보상이 가능하다. 올해 최저임금 기준에 따라 1일당 6만240원(시간당 최저임금 7530×8시간)~30만1200원(5배)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인정받는 금액은 크지 않다. 실질적 피해 규모에 따라 금액이 커지지만 기껏해야 최저임금의 1.5배 이내가 대부분이다.

올해 6월까지 형사보상 1건당 평균 보상액은 634만원이다. 지난해는 1건당 평균 488만원을 보상했다. 1·2심 변호사 비용에도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해외 선진국 대부분은 한국보다 보상 수준이 높거나 보상 인정 범위가 넓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의뢰인이 정작 사회에 돌아가더라도 이미 삶의 터전이 망가진 경우가 매우 많다”며 “형사보상은 최소 금액만 최저임금으로 정하고 입증 가능한 손해에 대해선 보상을 더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실과 따로 노는 '법정의 경제학'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민사소송

민사소송에서는 소송 비용 산정 문제가 현실과 동떨어진 규칙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A는 변호사를 선임해 B에게 20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A는 패소한 B로부터 소송 비용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A가 받을 수 있는 소송 비용은 200만원에 불과하다. 통상 민사소송의 경우 변호사비가 330만원부터 시작하는 점을 고려하면 소송비를 온전히 받아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소송비용은 관련 규칙에 따라 2000만원까지는 소송액의 10%, 2000만~5000만원 구간은 8%, 5000만~1억원 구간은 6%, 5억원 초과는 0.5%까지 인정해준다. 소송액이 1억원이면 최대 740만원을 소송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괴롭히기식 민사소송을 변호사로 대응했을 경우엔 더 억울한 일이 발생한다. 유통업을 하는 김모씨(44)는 갈등이 생긴 거래처로부터 2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1심은 거래처 측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보고 관련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비용은 거래처 측이 내라고 판결문에 적었다. 그러나 김씨는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이미 550만원을 지출했다. 소송비용을 돌려받더라도 350만원의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다.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하면 단계마다 손해는 계속 커져 김씨는 ‘셀프 변호’를 고려 중이다. 황성욱 법무법인 에이치스 대표변호사는 “법정에서 인정해주는 소송비용이 적어 소송에 휘말리는 자체로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라며 “민사는 돈싸움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민사소송에서 인정해주는 법정 지연이자율은 현실의 이자 수준보다 훨씬 높다. 청구액 지급을 지연하는 데 따른 이자율은 연 15%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최대 연 40%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다. 2015년 9월 개정 후 연 15%를 유지해오고 있다.

높은 지연이자로 인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례도 있다. 사업가인 C씨는 지인과의 돈 문제 끝에 2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C씨는 약 1억원에 대해 배상하게 됐다. 그동안 쓴 변호사 비용 3000만원과 약 3년간 소송을 하며 늘어난 이자 약 4000만원까지 하니 총 70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 C씨는 “1심에서 조정을 했더라면 훨씬 적은 돈으로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반대로 재판을 끌고 가면서 지연이자를 재테크로 삼는 꼼수도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소송액이 크고 승소 확률이 높으면 로펌도 의뢰인도 소송 자체를 천천히 진행하려고 한다”며 “상대의 불법행위로 인한 소송이면 2·3심까지 하면서 시간을 끌어 이자를 최대한 받아내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현직 고위 판사는 “형사는 억울함을 제대로 해소할 수 있고, 민사는 손해를 제대로 배상받을 수 있어야 좋은 재판”이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각종 제도를 고쳐 나갈 수 있도록 사법부와 입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