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오이는 산지 폐기까지…작물 피해 116.1㏊ 사상 최대

지난 17일 오전 강원 양구읍 송청리에서 3천300㎡ 규모로 쌀농사를 짓는 박봉화(63)씨가 콤바인을 몰고 황금 들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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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첫 추수를 하는 박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넉넉했다.

콤바인이 누런 벌판을 훑고 지나가자 튼실한 낱알이 금세 모였다.

이날 추수는 모내기를 한 지 110여 일 만에 이뤄졌다.

비가 적게 온 데다 일사량이 워낙 강했던 탓에 추수 시기가 지난해 보다 열흘 가까이 앞당겨진 것이다.

작황은 기대보다 나빴지만, 올해는 농협마다 쌀 재고가 부족해 수매가가 5천원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최대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인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는 배추 출하가 오히려 다소 늦어지고 있다.

긴 가뭄으로 생장이 더뎌진 탓에 속이 채 여물지 못한 배추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달 초 강릉지역에 내린 기습 폭우로 가뭄이 해갈돼 배추밭은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이 지역 고랭지 배추 출하는 다음 주부터 본격 시작할 예정이다.

정선, 태백 등 다른 지역 고랭지 배추가 대부분 큰 피해를 본 것에 비하면 이 지역은 풍작이다.

한 농민은 "올해는 평년보다 한 주 빨리 배추를 심었지만, 비가 오지 않아 출하는 오히려 늦어졌다"며 "그래도 제값을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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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전역을 한 달 넘게 휩쓴 기록적인 더위는 도내 농가 모습도 많은 부분 바꿔놓았다.

이른 추수와 비싼 값을 받게 돼 흐뭇한 미소를 짓는 농민이 있는가 하면, 일부 농가는 과잉 생산된 농산물을 산지 폐기하며 시름에 빠지기도 했다.

화천군은 예년보다 적게 내린 비와 풍부한 일조량으로 애호박 생산이 폭증했다.

공급 과잉은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다.

최저 생산비를 건지고 이윤도 남기려면 8㎏짜리 1상자가 경매가 기준으로 5천원 이상 받아야 하지만 2천원 선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에 화천군은 트랙터를 동원해 애써 키운 애호박을 산지 폐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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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군 오이 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횡성 청일면과 갑천면은 서울 가락동 농산물시장 물량의 30% 선을 점할 정도로 국내 대표 취청오이(청오이) 생산지다.

큰 태풍이나 수해가 없어 오이 생산량이 25% 이상 늘어났지만, 출하 값은 도리어 폭락했다.

이달 초 10㎏ 한 상자에 2만원 이상 받던 오이 가격이 7천원까지 곤두박질치자 농민들은 그 자리에서 작물을 내다 버려야 했다.

도내에서 작물이 고사하는 등 폭염 피해를 본 농지 면적은 116.1㏊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인삼·깨 등 특수작물이 54.4㏊, 채소류 48㏊, 밭작물 11.6㏊, 과수류 2.1㏊ 순이다.

피해 유형은 시듦, 고사, 열과 등이며 고랭지 배추, 들깨, 옥수수, 콩, 고추 등 작물이 피해를 봤다.

최근 수확철에 접어든 감자의 경우 지난봄 이상 저온에 이어 고온 피해가 덮치면서 생육이 부진해 예년 수확량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3.3㎡당 평균 10㎏ 생산하던 고랭지 감자는 씨알이 여물지 못해 올해는 5㎏ 정도 생산에 머무르고 있다.

평창지역 고랭지 감자는 올해 1천230여㏊ 규모로 재배해 국내 고랭지 감자 3천400여㏊의 35% 이상을 차지해 생산량 감소가 올가을 감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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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정선 등지의 고랭지 배추도 폭염으로 성장이 더뎌 품질이 떨어진 데다 병해까지 발생하는 등 역대 최악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5t 트럭으로 평균 1천600대 이상 배추를 출하한 태백 매봉산 배추 농가는 올해 200여 대 출하에 그치고 있다.

배춧속 수분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가운데서부터 녹아버리는 꿀통 현상도 곳곳에서 나타나 농민들은 울상을 지었다.

이정만 태백 매봉산 영농회장은 "지난달 22일 해발 1천100m인 배추밭 최고기온이 30.4도를 찍었다"며 "이는 매봉산 배추농사 50년 역사에서 가장 높은 기온이다"고 말했다.

폭염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도내 농가는 제19호 태풍 '솔릭'(SOULIK)의 경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폭염에 이어 태풍 피해까지 덮치면 농가 피해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