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딸아.”남측의 한신자 씨(99)는 1953년 전쟁 통에 헤어진 북측의 두 딸 김경실(72), 경영(71) 씨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60년 넘게 쌓인 그리움을 눈물로 쏟아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한씨는 1·4 후퇴 때 두 딸을 친척 집에 맡겨두고 셋째 딸만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한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린 듯 “내가 피란 갔을 때…”라며 또다시 울먹였다. 한씨는 행사 내내 두 딸의 손을 꼭 잡고 북측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65년 만에 상봉 ‘눈물바다’20일 금강산호텔 2층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장은 눈물바다였다. 이날 상봉장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89명 등 동반가족 197명과 북측 가족 185명이 만났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15년 10월 이후 2년10개월 만에 열렸다.상봉장에는 행사 전부터 ‘반갑습니다’란 노래가 울려 퍼졌다. 오후 3시에 시작된 첫 행사에서 이산가족들은 상봉장에 들어서 헤어진 가족을 확인한 뒤 상봉의 감격을 누렸다. 가족들은 오후 7시부터는 북측 주최로 열린 환영 만찬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들은 21일 개별 상봉을 한 뒤 22일 다시 헤어질 예정이다.남측의 이금섬 씨(92)는 1950년 피란길에 헤어진 아들 이상철 씨(71)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눈물만 펑펑 흘렸다. 금섬씨는 당시 남편도 함께 피란길에 올랐으나 전쟁 통에 헤어진 뒤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상철씨는 금섬씨에게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며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라고 말했다. 금섬씨는 상철씨의 북측 가족 사진을 보며 “애들은 몇이나 뒀니”라고 물었다.한복을 차려 입고 나온 남측의 문현숙 씨(91)는 1950년 당시 헤어진 여동생 영숙(79) 광숙(65) 씨를 만났다. 이들도 서로를 알아보자마자 기쁨과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다. 문씨는 오랜 세월 탓에 변해버린 두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어렸을 때 모습이 많이 사라졌네, 눈이 많이 컸잖아 네가”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상봉 직전 세상 떠난 가족도이산가족이 고령화하면서 안타까운 사연도 속출했다. 분단 이후 65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북측의 가족이 먼저 세상을 등진 가족도 다수 있었다. 남측의 조옥현 씨(78)와 남동생 복현씨(69)는 6·25전쟁 때 헤어진 북측 둘째 오빠의 자녀들을 만났다. 조씨는 2000년부터 북측에 있는 오빠 두 명을 찾기 위해 이산가족 찾기를 신청했다. 옥현씨는 올해 초 북측의 둘째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적십자로부터 전해듣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복현씨는 이날 처음 만난 북측 조카들에게 “아버지와 형님 생사 확인만이라도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만나게 되니 완전히 로또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남측의 김진수 씨(87)는 올해 1월 북측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돼 조카 손명철 씨(45)와 조카며느리 박혜숙 씨(35)를 대신 만났다. 진수씨는 전쟁 통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겨둔 채 홀로 피란길에 올랐다. 김씨는 상봉 전 취재진에게 “나는 아직 살았는데”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이번 상봉에서 부모·자식 간 상봉은 7건이었다. 형제·자매와 재회한 이들은 20여 명이고, 조카를 비롯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3촌 이상의 상봉이 대부분이었다. 2010년에는 부부, 부모·자식 간 상봉이 23건이었고, 2014년엔 12건, 2015년 5건이었다. 이산가족 고령자와 사망자가 많아지면서 직계가족 간 상봉이 줄어드는 추세다. 남북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자를 100명씩 선정하기로 했지만 남북 각각 11명, 12명이 건강상 이유로 만남을 포기했다.공동취재단/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얼굴)은 20일 “남과 북은 더 담대하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정기적인 상봉 행사는 물론 전면적인 생사 확인과 화상 상봉·상시 상봉·서신교환·고향 방문 등 상봉 확대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오늘 금강산에서 오랜만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다. 70년 넘게 생사조차 모르고 살던 부모와 딸·아들·자매·형제 등 170여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문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을 더욱 확대하고 속도를 내는 것은 남과 북이 해야 하는 인도적 사업 중에서도 최우선적인 사항”이라며 “특히 오래전에 남북 합의로 건설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 취지대로 상시 운영하고 상시 상봉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지금도 상봉의 기회를 얻지 못해 애태우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남측에만 5만6000명이 넘는다. 95세 어르신이 이번에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자 이제 끝났다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보도도 봤다”며 “저 역시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 그 슬픔과 안타까움을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시간이 없다. 최근 5년 동안 3600여 명이 매년 돌아가셨고 올해 상반기에만 3000명 넘게 세상을 떠났다”며 “이제 그분들의 기다림이 더는 길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이날부터 시작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관련해 “통일부 등 관계기관에서는 이번 상봉 대상자들의 연세가 101세부터 70세까지 고령인 만큼 응급진료체계 등 상봉 행사가 안전하게 치러지도록 각별히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왜 이렇게 늙었냐"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언니를 기다리던 북측의 두 여동생에게 웃으며 말을 건넨 맏언니 문현숙(91)씨는 끝내 울음이 터져 나왔다.20일 금강산호텔에 마련된 남북이산가족 단체상봉장에서는 어린 시절 헤어진 형제, 자매들이 65년에 다시 만나 상봉의 감격을 누렸다.문씨는 여동생 영숙(79)씨와 광숙(65)씨에게 "어렸을 때 모습이 많이 사라졌네, 눈이 많이 컸잖아 네가"라며 야속한 세월을 탓하는 듯했다.또 "광숙이 넌 엄마 없이 어떻게 시집갔느냐, 엄마가 몇살 때 돌아가셨냐, 시집은 보내고 가셨니"라며 동생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문씨와 동행한 아들 김성훈(67)씨는 어머니와 이모들의 감격스러운 첫 대면을 연신 사진으로 기록했다.이날 단체상봉에 앞서 미리 연회장에 도착해 문씨를 기다리던 영숙·광숙씨는 언니가 현장에 있던 북측 관계자에게 입구가 보이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은 뒤 자리를 이동하기도 했다.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북측의 남동생 김은하(75)씨와 재회한 김혜자(75)씨는 처음엔 주름진 동생의 얼굴이 낯선 듯 했다."우리 고향이 의성이다"라며 연신 확인하던 김씨는 이내 벌떡 일어나 은하(75)씨를 부둥켜안고 "진짜 맞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은하씨가 준비해온 모친 사진을 보고는 "엄마 맞다, 아이고 아버지"라며 또 한 번 목놓아 울었다.김씨는 동생과의 재회가 믿기지 않는 듯 "73년 만이다, 아이고야, 정말 좋다"며 "혹시 난 오면서도 아닐까 봐 걱정하면서 왔는데 진짜네"라며 감격스러워했다.남측의 누나 조혜도(86)씨와 동행한 조도재(75)씨는 휠체어를 타고 온 북측의 누나 순도(89)씨를 만나자마자 끌어안고 울었다.도재씨는 무릎을 꿇은 채 누나의 손과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며 "고생하신 게 얼굴에 다 나오네. 살아계셔서 고마워"라고 울었다.북측에서 나온 박삼동(68)씨는 봉투에 담아온 사진 수십장을 꺼내 남측에서 온 형 박기동(82)씨에게 보여주며 "이게 형님 사진입니다"라고 말했다.박기동씨는 생각에 잠긴 듯 가족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삼동씨와 동행한 여동생 선분(73)씨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며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