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대치동 구마을. 높게 뻗은 아파트와 빌딩 사이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낡은 단독주택 사이로 3~4층짜리 공동주택이 눈에 띈다. 좁은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 상가에 얼음을 파는 광고판과 ‘OO슈퍼마켙’이라고 쓰여진 간판이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사진)는 “강남 개발이 시작된 1970년대 대치동의 흔적들이 40년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 40년 동안 강남 개발의 화석같던 이곳이 재개발에 들어간다고 한다”며 “잊혀지기 전에 기록해 두려고 구마을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시덕 교수 "4대문 밖 변두리서 진짜 서울의 모습 찾았죠"
그가 ‘살아있는 서울의 역사’를 찾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약 1년 전부터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나고 자란 서울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스마트폰 하나를 들고 서울 곳곳을 누볐다. 걸으면서 사진을 찍었고 엄지손가락으로 글을 썼다. 그는 이처럼 직접 답사해 모은 이야기들을 담은 《서울선언》을 최근 펴냈다.

김 교수의 시선은 사대문 밖의 서울 변두리에 향했다. 활자로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아파트 단지와 상가의 골목, 주택가와 빈민가, 유흥가와 집창촌, 공단과 종교 시설에 발길을 옮겼다. ‘문헌학자’인 그는 “고문헌을 들여다봐도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 베트남보다도 서민들의 역사가 남아 있지 않다”며 “현재 서울의 역사에도 서울에 직접 살던 시민들의 삶은 잊혀진 채 사대문 안 궁궐 같은 조선시대 유적만 기억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의 ‘배제성’에 주목했다. 서울 한복판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 온 빈민과 부랑자, 노점상들은 서울 외곽으로 쫓겨났다. 공단과 뉴타운을 따라 시민들이 바깥으로 흩어졌다. 일제의 잔재와 미군의 흔적도 지워졌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만들어진 역사에만 집착한 나머지 서울 시민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재건축이나 철거가 예정된 곳들을 가 보면 ‘어차피 없어질 것 뭣하러 기록을 남기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걸 만들지 말고, 지금 있는 것이라도 애정을 갖고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