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사진)이 3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 거래 의혹’을 기정사실화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재판거래 의혹' 사실상 시인… 사법부 태풍 속으로
김 대법원장은 이날 담화문에서 “지난주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꼈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이번 조사는 지난 사법부의 과오와 치부를 숨김없이 스스로 밝혀냄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법부 구성원 모두는 조사 결과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평가와 꾸짖음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조사단의 보고서가 재판 거래로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과 반대로 재판의 진행이나 결과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모양새다.

김 대법원장은 앞으로 사법부에서는 이런 시도가 절대 없을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를 비롯한 사법행정 담당자가 사법행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재판의 진행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봉쇄하고, 이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대법원이 형사조치를 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및 각계의 의견을 종합해 형사상 조치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형사고발을 주장하는 일부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해결책으로는 법원행정처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법원행정처를 청사 외부로 이전하고 법원행정처에 상근하는 법관들을 사법행정 전문인력으로 대체한다는 구상이다. 또 법관의 서열화를 조장하는 승진 인사를 과감히 폐지하는 등 사법부 관료화를 방지할 대책을 시행하겠다고도 말했다. 자문기구인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의사결정 기구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사법부는 태풍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한 현직 법관은 “관련 의혹이 명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재판 영향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결국 사법부 적폐 청산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