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오1리 학습 동아리에서 한글 공부에 열중하는 어르신들.
숭오1리 학습 동아리에서 한글 공부에 열중하는 어르신들.
마을 곳곳에서 시를 쓴다. 노래를 부르고 연극도 한다. 동네마다 각기 다른 풍경의 25개 무대를 마련한다. 경북 칠곡 인문학마을은 지방 소도시가 겪는 고령화, 저성장의 파고 속에서도 자생력 있는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칠곡군 북삼읍 숭오1리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글 읽는 소리가 청명하다. 20개 남짓 좌식 책상에 앉아 연필을 쥔 손들엔 주름이 가득했다. 80세 전후의 동네 어르신들로 구성된 학습 동아리엔 수년째 배움의 열기가 꺼지지 않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한데 모여 국어를 배우고 노래도 부른다.

글을 쓰던 할머니들이 자리를 이동해 합창을 시작했다. 무대는 100년이 넘었다는 마을 빨래터다. 그래서 이름도 ‘빨래터 합창단’이다. 저마다 독백처럼 부르던 옛 구전가요에 극적인 요소를 추가해 뮤지컬로 재구성했다.

단원 모두 ‘칠곡의 스타들’로 유명해졌다. 정은경 숭오1리 빨래터 합창단 교사는 “예전엔 마을회관에서도 여자 방, 남자 방이 따로 있어 서로 잘 교류하지 않고, 어머니들도 집에 주로 계시면서 조용한 여느 시골의 모습이었는데 인문학마을 살이를 시작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숭오1리에 빨래터 합창단이 있다면, 어로1리엔 ‘보람 할매 연극단’이 있다. 역시 한글 학습 동아리에서 시작해 연극으로 진화했다. 지선영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평생학습담당은 “전국구로 유명해지면서 한 해 100여 개 공연을 올리고 1000만원 이상 수익금을 내는 인문학마을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총 25개 마을이 저마다 다른 콘셉트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다. 사진 사랑방, 기타 교실, 천연 염색 교실, 신문지 재생공예 교실, 풍물 배우기, 전통 음식 연구회, 에너지 탐구 연구모임 등 2013년 초 10개 마을을 시작으로 칠곡 인문학마을이 결성된 뒤 오늘날까지 꾸준히 참여 마을이 늘어났다. 지 평생학습담당은 “25명의 마을 리더, 25명의 마을 기자, 100여 명의 마을 교사. 지난 5년의 성과를 보여주는 수치”라고 말했다.

숭오1리는 140가구, 321명이 한데 살아가고 있다. 이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9%(20% 이상 초고령사회)로 고령화가 진행된 데다 13%에 해당하는 1인 가구 대부분이 홀로된 할머니들이었다. 숭오1리는 문화를 매개로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주민 케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칠곡 인문학마을이 유지되는 방식은 공동체, 네트워크, 생태계로 요약된다. 25개 마을이 각각의 문화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간 교류를 통해 서로가 멘토와 멘티 관계로 끈끈이 얽혀 있다.

생태계는 크게 4개 축(칠곡군 교육문화회관, 문화 기획자 및 연구자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 학습 동아리, 4개 협동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지속 가능한 ‘인문학 도시’가 되도록 숨을 불어넣고 있다.

4개 협동조합 중 가산면 학상리에 있는 ‘학수고대 협동조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마, 토실, 칠송정, 사부, 노갱이 5개 마을 5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논밭 한가운데 커뮤니티 공간 ‘학수고대’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탁아소로 사용된 농촌보육정보센터를 리모델링한 동네 사랑방이자 학당이자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학춤과 풍물도 배운다. 1년 내내 연습해 가을 축제 때 작품으로 올린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사람이 책이 되는 ‘사람책’이다. 어르신들이 각자의 인생을 약 15분의 스토리로 요약해 들려주는 시간이다. 김영현 유알아트 대표는 “사람책과 같이 삶을 기록하는 건 ‘당신의 삶이 예술일 수 있다’는 응원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칠곡=한경머니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