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지어진 지방의 한 경찰서. 외벽에 금이 가고 부식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340여 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공간이 부족해 신설된 여성청소년과는 창고를, 과학수사대는 한쪽에 가건물을 지어 사무실로 쓰고 있다. 하루에도 200명 넘는 민원인이 이 경찰서를 찾지만 주차공간은 40대에 불과하다.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 사무실이 없어 컨테이너에 입주한 경찰서도 적지 않다.

노후 경찰서 민자 유치로 리모델링 나선다
◆민자로 경찰서 신축·개축 후 임대

4일 경찰청에 따르면 내년부터 낡은 지방경찰청사나 경찰서 신축·개선 작업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 부족으로 지지부진하던 경찰서 증·개축이 민자 유치로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 첫 단추로 경찰수련원을 민간투자방식으로 짓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를 위해 경찰청 복지정책담당관실은 최근 ‘경찰수련원 민간투자(BTL) 적격성 조사’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경찰수련원은 경찰공무원이 연수·워크숍 등을 할 수 있는 시설이다. 경찰수련원은 전국 8곳(217개실)에 불과해 전 직원(12만593명)의 1인당 이용가능일수는 한 해 0.6박으로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1인당 객실비율(0.18%) 역시 국방부(0.48%)나 서울시(2.07%)보다 크게 낮다.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이지만, 복지투자는 예산 부족 탓에 정부 재정 사업에선 늘 후순위로 밀리는 게 현실이다. 그런 만큼 경찰은 민자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BTL 방식에 대한 연구용역에서 도출한 적격성 및 타당성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와 상의해 수련원 신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BTL은 민간자본으로 신축·리모델링한 뒤 20년간 공사비와 운영비를 민간투자자에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다.

◆낡은 경찰서 비중 94%…숨통 트이나

민간투자를 검토하게 된 배경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원래 공공청사의 신축 및 개선은 국유재산관리기금으로 한다. 하지만 제한된 기금 규모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다는 점이 한계다. 이에 따라 개정안에서는 민간투자로 지을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에 지방청·경찰관서·경찰수련원 등이 포함됐다.

경찰수련원으로 물꼬를 튼 뒤 내년부터는 전국 지방청사와 경찰관서에 대한 민간투자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다는 게 경찰의 구상이다. 지은 지 20~30년 이상 된 노후 시설이 대상이다. 전국 2253개 경찰관서 중 30년 이상은 549개소, 20년 이상은 1563개소로 집계됐다. 20년이 넘은 노후 시설이 전체의 93.7%에 이르는 셈이다. 경찰청은 노후 시설이 워낙 많은 만큼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정밀한 기준을 세워 대상지를 정할 계획이다.

한 경찰관은 “지방으로 가면 근무 인력은 느는데 공간이 없어 컨테이너를 사무실로 쓰고, 배관시설이 부식해 누전이나 누수 위험이 있는 경찰서도 많다”며 “민자를 유치할 수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