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점거했어도 불법 몰랐다면 처벌 못 한다고?
도로를 점거하는 불법 시위에 참가했더라도 불법 사실을 몰랐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된 기아자동차 노조 간부 우모씨(43)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수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우씨는 2015년 11월14일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석했다가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도로를 점거한 혐의로 기소됐다. 주최 측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는 광화문 광장부터 청와대 앞까지 이르는 거리를 행진하겠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이를 불허했다. 우씨는 6만8000명의 집회 참가자와 함께 세종대로 전 차로를 점거한 채 행진하고 차로 위에 앉아 구호를 제창하는 등의 방법으로 차로를 점거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우씨가 교통 방해를 유발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은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순차적·암묵적으로 의사를 함께하며 차로 등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교통을 방해했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대법 재판부는 “우씨가 이 사건 집회에 참가할 당시는 이미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고 그 일대 교통을 차단·통제하는 상황이었다”며 “우씨가 직접 교통 방해를 유발했다거나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이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조직실장이지만 이 사건 집회에는 오후 3시 이후에 단순 참가한 것이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지난 1월에도 같은 시위 참가자 권모씨(46)의 도로 점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한 공안통 검사 출신 변호사는 “시위 참가자는 현장에서 반복되는 경찰의 경고 방송 등을 통해 시위의 불법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며 “곳곳에서 시위를 주도한 시위꾼들도 단순 참가자라고 우긴다면 이를 기소해 처벌하는 게 점차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