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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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똥 군기'로 불리며 대학 내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상대로 군기를 잡는 악습이 여전하다.

문제 인식은 있지만 '보복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공론화가 쉽지 않고, '누군가 총대를 메고 폭로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쉬쉬하는 사이 악습은 끊임없 이어지고 있다.

15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대학생활 앱 '에브리타임'에 강원도 내 한 국립대학 예체능 학과의 군기 잡기 실태를 폭로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단과대학의 군기가 어느 정도인지, 다른 과들은 어떤지'를 지나가며 묻는 듯한 하나의 글에서 시작된 폭로는 FM(큰 목소리로 하는 자기소개)부터 집합, 행사 필참(필히 참석의 준말) 등 그동안 학생들이 겪은 악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 학생은 "억지로 춤을 시키고, 춤 검사를 수시로 한다. 춤으로 선배들을 웃기지 못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인사받는 것에 매우 집착한다"고 썼다.

다른 학생도 "개강총회 때면 선배들 마음에 들 때까지 FM을 시킨다. 미리 공지도 없이 학교행사에 필참하라고 하고는 불참한다고 하면 열을 낸다. 체육대회 전에는 아침 운동에도 참여해야 한다"며 '강요'가 아닌 일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학생들은 "납득도, 이해도 안 되는 일이 투성"이라며 "기쁨과 기대감으로 대학에 왔는데 개강 첫날부터 짓밟고 수치심을 주면 선배 대접을 하고 싶겠냐"고 했다.

학생들은 폭로하면서도 보복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한편의 불안감도 숨김없이 드러냈다.

터뜨리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괜히 보복당할까 봐, 보복으로 인해 학교생활이 힘들어질까 봐, 공론화를 시도하려 했을 때 조교가 겁을 줬기 때문에 참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의 축소판'인 대학에서 폭행과 같은 물리적인 보복보다 두려웠던 건 지나가면서 째려보고, 다 들리게 욕설을 내뱉고,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음해하는 등 행위였다고 했다.

군기를 잡는 선배들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론화는 더 어려웠고, 실제 공론화를 했을 때도 학교에서는 '그러지 말아라' 정도의 주의가 다였기에 악습 없애기에 실패했다고도 했다.

한 학생은 "누군가에게는 평생 상처가 된다. 양심이 있으면 괴롭힌 후배들에게 잘못을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권위적이고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사회 구조적인 측면과 연결되는 부분이 크다고 진단했다.

단합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취업전쟁으로 인한 스펙 쌓기와 학비·생활비 부담 등으로 학과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 탓에 권위를 이용한 강요 등 예전 방식을 쓴다는 것이다.

오충광 한림대 학생생활상담센터 상담교수는 "이 같은 방식은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며 "건전한 방법으로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미투 운동처럼 대학사회에서도 문제가 있으면 자유롭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를 수용하려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