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7일 주당 최대 근로시간(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당장 오는 7월1일부터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한국의 장시간 근무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되겠지만 기업에는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근로시간 단축 '시험대'에 오른 대한민국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토·일요일 8시간씩을 더해 주당 최대 68시간 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2004년 ‘주40시간제’가 도입됐지만 ‘1주일은 평일 5일’이란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른 것이다. 개정안은 이 해석을 폐기하고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로 규정하고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제한했다.

산업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 규모별로 적용 시기를 차등화했다.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올 7월부터,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한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노사가 합의하면 2022년 12월31일까지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허용한다.

휴일 근무 시에는 지금처럼 8시간 이내는 통상임금의 150%를, 8시간 초과는 통상임금의 200%를 지급한다. 휴일근무 전체에 대해 중복할증을 적용해 통상임금의 200%를 달라는 노동계 요구는 인정되지 않았다. 대신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들만 적용되던 법정공휴일 유급휴무제도를 민간까지 확대한다. 사실상 무제한 근로를 허용하던 특례업종은 기존 26개에서 육상·수상·항공운송업, 기타운송서비스업, 보건업 등 5개 업종으로 축소했다.

이번 여야 합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가 근로시간 단축을 하지 않으면 주당 68시간으로 규정된 정부 행정 해석을 폐기하겠다”고 압박한 영향이 컸다. 여야가 근로시간에 합의하면서 대법원에 계류된 근로시간 관련 갈등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까지 단축되면서 기업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시간 제도가 바뀌는 것은 2004년 주 40시간제 도입 이후 14년 만이다. 게다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단숨에 16시간(68시간→52시간)이나 줄일 만큼 급격한 변화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교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낭패를 겪을지 모른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일하는 방식을 효율적으로 바꾸고 인력 운용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시간 단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많은 한국의 장시간 근로 관행(연간 2000시간가량)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에서 ‘1800시간대의 노동시간’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하면서 근로시간 단축을 약속한 바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앞두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젊은 근로 세대의 출현과 4차 산업혁명 등 산업현장의 변화 추세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예상되는 문제도 만만찮다.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과 중소기업 현장의 인력난을 우려한다. 한국경제연구원 추산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연간 12조원대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연장근로가 많은 제조업에서만 7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이번 합의로 공휴일 근무도 유급화된다. 연간 15일가량 되는 공휴일은 대기업은 보통 단체협약에 유급으로 정해져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뿌리산업 등 중소 제조업체는 인력난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기업의 부담 증가는 일자리를 해외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노동계도 휴일 근로에 대한 중복할증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자들의 소득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국내 임금 체계는 대부분 기본급이 낮고 연장·초과근로 등 각종 수당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임금 중 초과급여는 총액 대비 약 30%에 이른다. 임금체계가 합리적으로 개편되지 않는다면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소득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의 세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계 전문가는 “2013년 정년연장을 법으로 의무화했을 때도 임금피크제 등 보완책 마련에 소홀한 탓에 산업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졌고 올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도 후폭풍을 몰고 왔다”며 “근로시간 단축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탄력근로시간

탄력근로시간은 계절별·업종별로 업무량이 달라지는 산업 특성을 고려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의 예외를 허용하는 제도다. 근로기준법 51조에 따라 노사가 합의하면 3개월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법정근로 시간을 넘지 않는 조건으로 특정 주에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할 수 있다.

● 특별연장근로시간

특별연장근로시간은 천재지변이나 그에 준하는 재해·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제도다. 근로기준법 53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심은지·배정철 기자/최종석 전문위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