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무' 제천 건물 곳곳 뇌관…밀양 병원도 부실점검 논란
"5천㎡미만 건물 가족·직원 점검 허용…기준 강화 시급"


수십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밀양 세종병원 참사의 공통분모 중 하나는 소방시설의 '셀프 점검'이다.
절반 넘는 건물 소방 셀프점검…제천·밀양 참사 닮은꼴
건물주와 특수관계인 소방안전관리자가 소방 설비·장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면 시설 교체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고 안전한 건물이라고 관할 소방서를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자체 점검은 소방시설법상 법적 하자가 없다.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제천에 이어 밀양 병원 역시 자체 소방점검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셀프점검을 없애거나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방 안전점검은 종합정밀점검과 작동기능점검으로 구분된다.

스프링클러 등이 설치된 연면적 5천㎡ 이상의 건물은 현행법상 전문업체에 의뢰해 종합정밀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미만의 규모 건물은 그렇지 않다.

소방안전관리자 자격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3천813㎡, 밀양 세종병원은 1천489㎡로 종합정밀점검 의무가 없다.

두 곳 모두 작동기능점검 대상일 뿐이었다.

이런 탓에 건물주의 가족이나 직원이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따 소방시설을 점검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있다.

지난달 21일 대형 화재로 29명의 희생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는 경매로 이모(54·구속)씨에게 매각되기 전까지 전 건물주인 박모(59·입건)씨의 아들이 소방안전관리를 담당했다.

이른바 셀프 점검을 한 것인데, 박씨의 아들은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소지해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팔이 안으로 굽듯 점검 결과는 건물주에게 유리하게 작성됐다.

박씨의 아들이 2016년 8월 제천소방서에 제출한 점검 결과 보고서에는 소화기 충전 필요, 비상 조명등 교체 등 경미한 사안만 지적됐다.
절반 넘는 건물 소방 셀프점검…제천·밀양 참사 닮은꼴
그러나 건물 매각 후인 지난해 11월 민간업체가 이 건물을 점검했을 때는 스프링클러 고장, 화재 감지기 이상, 완강기 부족, 방화셔터 작동 불량 등 29개 항목, 66곳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소방안전시설이 완벽에 가까웠던 건물이 불과 1년 만에 뇌관이 곳곳에 도사린 '부실 복합 건물'로 드러난 셈이다.

밀양 세종병원도 2015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건물 내 소방시설 작동기능점검을 이 병원 총무과장인 김모(38)씨가 했다.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 소지자인 김씨가 자체 점검 후 방화문을 포함해 자동화재탐지설비, 인명구조 기구 등 모든 시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소방서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 참사가 발생했을 때 고열에 의해 찌그러지면서 그 틈으로 연기가 유입되며 인명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찌그러짐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있는데, 비정상적이라면 총무과장인 김씨가 부실 점검을 했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 취득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도 문제다.

30층 이상이거나 높이 120m 이상인 아파트를 관리할 수 있는 1급 자격증은 하루 평균 8시간씩 5일간, 스프링클러 또는 옥내 소화전이 설치된 특정소방대상물을 관리할 수 있는 2급 자격증은 4일만 교육받으면 된다.

교육 마지막 날 필기시험을 치러 60점 이상이면 자격증이 발급된다.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 취득이 쉽다 보니 작동기능점검 대상인 연면적 5천㎡ 미만의 건물 중 전문업체에 소방시설 안전점검을 의뢰하는 비율은 47∼48%에 그치고 있다.

절반을 웃도는 건물주가 셀프 점검을 하고 있는데도 소방당국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어 셀프 점검 결과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점검도 하지 않고 이상이 없다고 서류를 제출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사고 예방을 위해 자체적으로 하는 소방 점검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