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으로 뛰쳐나와" 생존자가 전하는 긴박한 탈출 순간
"TV 보도에서 희생된 분들의 이야기가 나오던데 너무 안타까워서 잠을 못 이루었어요."

지난 21일 오후 화마가 덮친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 3층 남자 사우나에서 목욕했던 박모(57)씨는 끔찍하고 처참했던 당시를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몸이 불편해 찜질욕을 자주 하는 박씨는 21일에도 평소처럼 사우나를 찾았다.

목욕을 마치고 남탕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불이야"하고 외치는 다급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왼편 유리창을 통해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출입구 쪽은 이미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

급한 마음에 몸을 돌려 사방을 둘러봤지만 자욱한 연기 탓에 출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 건물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사우나 한쪽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뛰라고 소리쳤다.

뿌연 연기 속에서 어슴푸레 눈을 뜨고 더듬어 가다보니 비상구가 나왔다.

박씨는 주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냅다 비상구 쪽으로 코를 막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얼마나 급했던지 박씨는 당시 속옷만 입은 상태였다.

그의 손목에는 그때 사용했던 남성 사우나 95번 옷장 열쇠가 그대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남자 사우나에서 뛰쳐나온 사람만 4∼5명 정도 됐다고 박씨는 전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박씨는 자신이 살아남은 데 대해 22일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나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라면서 "건물 내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빠져나오지 못해 죄책감이 든다"고 가슴 아파했다.

그러면서 "당시 상황이 악몽처럼 자꾸 떠올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라며 괴로워했다.

전날 9층짜리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29명이 숨지고 29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