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여중고 '합격기원 떡 전달식'…85세 등 175명 수능 도전
만학도들의 수능 응시 '출정식'… "엄마도 대학 간다, 파이팅!"
"엄마도 대학 간다.

일성여고 파이팅! 등록금 준비해라, 수능시험 대박!"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4일 서울 마포구의 학력인정 평생학교 일성여자중고에서는 이번 수능에 응시하는 학생 175명을 응원하는 '합격기원 떡 전달식'이 열렸다.

이 학교의 수능 응원 행사는 여느 고등학교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응시생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할머니 만학도이기 때문이다.

교문에서부터 팻말을 들고 색색의 도구를 흔들며 응원 구호를 외치는 '후배'들도 나이만큼은 수능에 도전하는 선배들에 뒤지지 않았다.

시험 당일 유의사항 안내 동영상 상영이 끝나고 사회를 맡은 교사가 "교실에 몇 시까지 가야 한다고요?"라고 묻자 만학 수험생들은 입을 모아 "8시 10분"이라고 대답했다.

눈이 침침한 학생들을 위해 돋보기 등 필요한 물품은 잘 챙겨가서 매 교시 감독관의 사전 점검을 받으라는 안내도 이어졌다.

이선재 교장은 "나이가 80이든 20이든 공부하면 젊은 사람이고 안 하면 늙은 사람인데 여러분은 공부하니까 모두 젊은이"라며 "감독관이 혹시 '학부형은 못 들어간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지 말고 당당하게 수험표 보여주고 들어가시라"고 당부했다.
만학도들의 수능 응시 '출정식'… "엄마도 대학 간다, 파이팅!"
일성여고 수능 응시자 중 최고령인 이명순(85) 할머니는 "일본 강점기에 태어나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6·25를 겪으며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늦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볼 것이고 다시는 후회하지 않겠다"고 힘줘 말했다.

장일성(81) 씨는 "입학 원서를 직접 써줬던 남편과 지난해 사별했다"며 "내 졸업도 못 보고 떠난 남편이 야속하면서도 응원해주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차오른다.

남편이 하늘에서 응원해줄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2남 3녀의 엄마 김복중(58) 씨는 "어린 시절 딸이라는 이유로 공부하지 못해 마음 아픈 시절이 많았고 그게 한이 됐다"면서 "일성여고에 입학해 50년 만에 등교할 때 눈물이 났는데 이제 수능까지 친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이순(耳順)에 문청(文靑)의 꿈을 펼친 학생도 있었다.

임광숙(60) 씨는 "어릴 적 농번기에 짬을 내 시집과 문학작품들을 읽으며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꿈을 접어두고 있었다"면서 "학교에서 문예 동아리 활동을 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고 9월에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다"고 기뻐했다.

임 씨는 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남은 삶을 시인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만학도들의 수능 응시 '출정식'… "엄마도 대학 간다, 파이팅!"
만학도 틈바구니에서 '젊은 피'도 도전 일성을 외쳤다.

김민지(22) 씨는 "중국에서 태어나 17살 때 한국으로 온 후 한국어부터 배우고 뒤늦게 이곳에서 중학교 과정부터 시작했다"면서 "어르신들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한국사회에 적응했다"고 웃었다.

그는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는 과연 내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멋진 대학생활을 할 꿈에 부풀어 있다"면서 "제가 원하는 중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일성여중고는 구한말 지식인 이준(李儁) 열사의 고향 함경북도 북청 출신 실향민들이 1952년 설립한 야학이 시초다.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에 힘쓴 이 열사의 뜻을 기려 학교 이름도 그의 호 '일성'(一醒)에서 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