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출발해 오프라인으로 확산되며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이병태 KAIST IT경영학과 교수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헬조선 타령’이 “철없는 청년들의 빈정거림에 불과하며, 부모들이야말로 울고 싶은 세대”라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8일 “이 교수의 생각은 오만”이라며 “젊은이들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옹호하고 나서면서 설전이 달아올랐다. 두 교수는 이후에도 반박과 재반박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인 등 저명 인사들과 교수의 제자들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논쟁에 가세하고 있다.
'헬조선 논쟁'의 진화…자본과 경쟁을 논하다
SNS 넘어 오프라인으로 논쟁 확산

과거 헬조선 논쟁이 단순히 세대 간 의견차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논쟁은 좌·우 간 철학 차를 드러내는 ‘리트머스용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 교수는 19일 또 다른 글을 통해 “풍요로운 물질문명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의 좌절과 분노를 껴안지 않으면 안 된다”며 “대한민국의 경쟁은 그 심각성이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난스럽고 살벌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지적한 경쟁 문제를 반박한 한양대 학생의 글도 화제가 됐다. 파이낸스경영학과 3학년인 박진우 씨(22)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박씨는 “경쟁과 성장이라는 자본주의 운영원리가 한국 사회 문제를 야기한 것처럼 박 교수가 말씀하시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오히려 서비스업과 농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할 부문의 경쟁을 막아놓은 규제들이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의 원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누리는 더 나은 삶의 원리는 선배 세대가 근면하고 성실히 저축해 쌓아온 ‘자본’”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도 재반박에 나섰다. “제가 마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대해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고 니들이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타박만 하는 사람인 것처럼 일반화해서 공격한다”며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지식경제, 디자인경제에 맞는 젊은이들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그 모든 것이 다음 세대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번엔 결판 보자”…철학적 이슈로 진화

이 교수는 헬조선이란 언어 자체가 사고의 틀을 규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헬조선이라는 결론에 모든 걸 끼워맞추는 확증편향에 대한 경계다. 편견 때문에 통계를 오독하거나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헬조선 용어를 정치적 선동 도구로 이용하는 점도 우려했다. 젊은이들의 부정적 인식을 부추겨 정치적 도구로 삼는다는 지적이다. 헬조선이란 용어가 비과학적 사고를 조장한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전 세계적인 소득불평등을 볼 때조차 글로벌화와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 구조 재편에 따른 거시적 현상임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만 지옥이 돼가는 것처럼 인식한다는 것이다.

재벌이 원흉이라는 진보주의자들이나 대기업 강성 노조를 공공의 적으로 설정한 이들 모두 이 같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헬조선이라는 감정적이고 정치적 폭발성을 가진 용어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과학적 분석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고 우려했다.

언론인도 가세했다. 권순활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로벌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을 ‘헬조선’ 운운하며 비하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라며 “당신은 행복한 삶을 당연히 누려야 하는데 사회나 국가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는 일부 지식인의 사이비 힐링론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이 교수를 지원했다.

이 교수가 헬조선 논쟁에 불을 댕기자 박 교수는 이날 오후 3시30분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5000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 몇 가지 해명’이라는 글을 올렸다. 박 교수는 “여러 반론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행복을 누리며 사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내 글에서 ‘행복세대’는 우리 세대 중 ‘대학을 나와 성공적으로 기반을 닦은 사람들’에 국한된다. 결코 우리 세대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발 물러섰다.

행복세대의 오만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겸손한 책임의식을 느끼자는 취지라고 적었다. 이 교수와의 첨예한 철학 차에 대해선 ‘인생관(세계관)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그분(이 교수)은 아름다운 세상을 경쟁의 산물로 본다. 그에게 아름다운 세상이란 열심히 노력하고 땀을 흘리면 그에 맞는 보상을 받는 세상이다”며 “나는 사회적 연대를 경쟁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이 교수와의 논쟁을 피할 생각이 없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런 가치론적 논쟁이야말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