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산불 현장, 강풍으로 되살아나는 도깨비불과 '사투'

"사흘째 부는 바람아, 제발 그만 좀 멈추어다오"

삼척 산불 진화작업에 투입된 태백시 공무원 김모(50) 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씨'를 잡기 위해 꼬박 밤을 지새웠다.

사흘째 이어진 삼척 산불이 이웃한 태백시 경계지점인 백두대간 건의령 고개까지 확산했기 때문이다.

8일 오후 건의령 중턱부터 북쪽 댓재까지 잇는 백두대산 등산로.


이맘때 장관을 연출하던 초록의 산림은 시커먼 '벌거숭이'로 바뀌었다.

산 곳곳 주변 흙더미에 봄기운에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마다 까만 잿더미 이불에 뒤덮여 있는 듯하다.

더는 불이 확산하지 않도록 곳곳에 진화대원이 배치돼 흙을 덮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김 씨를 비롯해 진화작업에 동원된 공무원과 장병은 가방 속 김밥과 주먹밥, 전투식량을 꺼내 허기를 채웠다.

현장에서 산불 방어선을 구축하던 한 공무원은 "전날 불을 끈 곳인데 다시 불씨가 되살아났다"며 "아침에 서풍이 불었다가 오후 들어 역풍이 부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바람에 숨어있는 불씨가 골칫거리"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건조한 날씨 탓에 '풀풀' 흙먼지가 날리는 산길은 불씨가 숨어있기에 최적의 장소다.

진화작업을 했지만, 곳곳에 숨어있던 불씨는 강풍을 만나 또다시 '도깨비불'을 만드는 것이다.

전날 밤 진화가 될 것 같았던 건의령 일대도 마찬가지다.

건의령 주변 방향을 수시로 바꾸는 협곡풍을 탄 불씨는 주민과 진화대원을 또다시 위협했다.

시민 박모(55) 씨는 "베어놓은 나무 뭉치 아래 숨어있던 불은 가랑잎 속에 숨어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건의령 일대 민가마다 온통 연기를 뒤집어쓰고 타들어 가는 잿더미 냄새가 휘감았다.

고갯길에 내려오는 길에 만난 박모(75) 씨는 불에 타버린 조상 묘를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상당히 먼 거리인 이곳까지 불씨가 날아들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70년이 넘게 이 마을에서 살면서 강한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불이 옮겨온 것은 처음 겪는다"고 말했다.

건의령 인근 늑구1리 마을회관에 도착하자 산불을 피해 몸을 피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 산불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모(67·여) 씨는 "밤사이 불이 번질까 걱정돼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지만, 새벽 시간 깨어보니까 진화작업에 매달리는 군인 모습에 그나마 안심을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웃한 점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마을 뒷산까지 번지자 노인회관에 거처를 임시로 옮긴 상태다.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밤새 마을을 지키는 주민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주민들은 마을 방향으로 향하는 불을 막기 위해 밤새 호스 물을 뿌리며 화마와 사투를 벌였다.

진화작업에 나선 김모(57) 씨는 "산불이 난 곳이 지대가 험해서 진입이 힘들지만, 현재 바람이 잦아들고 있어서 다행"이라며 "오늘 중 산불이 진화되어야 내일 투표도 가능할 듯싶은데, 만약 진화가 안 되면 투표하고 다시 올라와 진화작업을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흘째 이어지는 삼척 도계읍 일대 산불은 현재 주택 3가구(폐가 2가구)와 약 100ha 산림에 피해를 준 것으로 집계됐다.

(삼척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ha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