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약 없는 사회
고대 인류는 마약을 ‘신의 선물’로 생각한 듯하다. 원시시대엔 마약을 종교의식이나 치료용으로 사용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는 양손에 곡식과 양귀비를 들고 있다.

우리 문헌에도 마약이 등장한다. 고려시대 의약서 ‘향약구급방’엔 대마를 약재로 활용하는 법이 수록돼 있고, 조선 성종 5년 일본에 보낸 물품 중 양귀비 씨앗이 포함됐다. 이를 보아 당시 마약을 귀한 물품으로 취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마약에 관한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면서 국제 사회는 1912년 헤이그 아편협약 이후 마약류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해 왔다. 1990년 마약에 관한 수사권을 확보한 관세청도 마약류 단속에 힘을 모았다.

관세청의 마약 단속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에서 남용되는 마약 대부분이 해외 밀수로 공급되는 특성상 공항·항만에서의 단속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마약이 일단 국내로 반입되면 적발하기 어렵고, 단속에 막대한 인력과 예산이 들어간다.

지난해 관세청이 적발한 마약류는 총 380건, 금액으론 887억원에 달한다. 연간 마약류 밀수단속 건수로 사상 최고치였다. 이는 검찰과 경찰 등 전체 마약단속기관에서 적발한 금액의 80% 정도다.

마약 밀반입 경로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여행자가 들고 오거나 국제우편, 특송화물, 수출입화물에 숨겨 온다. 관세청은 마약류 반입 차단을 위해 국내 단속기관은 물론 유엔, 세계관세기구, 미국 마약단속청 등 국제기구나 외국 세관당국과 정보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특송물류센터를 설치해 소량으로 들여오는 마약을 집중 검색해 차단하고 있다.

마약 단속의 일등공신은 현장에 배치된 30마리의 마약탐지견이다. 지난해 마약탐지견이 적발한 마약은 139건, 470억원 규모로 전체 적발 중 절반을 넘는다. 마약탐지견의 후각은 사람보다 약 400배 우수해 숨겨진 마약을 찾는 데 효과적이다. 또 마약탐지견의 존재만으로도 마약 반입 예방 효과가 있다. 올해엔 마약탐지견을 9마리 더 늘릴 계획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마약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마약 밀수가 증가하며 마약 확산에 유리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마약 없는 안전한 사회를 위한 관세 국경 관리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천홍욱 < 관세청장 chunhu@customs.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