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강의가 5만원…고시촌 파고든 '둠강'
지난 1일 오후 7시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5번 출구. 모자를 눌러쓴 40대 남성이 한 학생에게 다가가 “물건 사러 오셨죠?”라고 속삭였다. 학생이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자 ‘쪽지’ 한 장을 주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약 거래를 방불케 하는 ‘불법 인강(인터넷 강의)’ 거래 장면이다. 쪽지에는 불법 녹화한 인강 동영상 파일이 담긴 웹하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 근처에선 이런 ‘불법 인강’ 거래가 자주 목격된다. 주로 행정고시나 공인회계사(CPA)시험 등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구매한다. 고시생 사이에서 ‘둠강(어둠의 인강)’으로 불린다.

◆정가의 10~20%인 불법 인강

고시촌에서 인기가 많은 인강은 가격이 비싼 데다 학생끼리 공유할 수 없다. 행정고시 2차 시험 인강 가격은 과목당 30만원이다. 전체 5개 과목을 들으려면 150만원이 필요하다. 불법 인강은 정가의 10~20% 선에 거래된다. 행정고시를 준비 중인 신모씨(26)는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강의 가격이 너무 비싸 어쩔 수 없이 ‘둠강’을 구매한다”고 털어놨다.

불법 인강을 비밀리에 파는 사람들은 경찰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보안 수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판매자들은 구매자의 휴대폰 번호를 동영상에 삽입한다. 구매자가 신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불법 인강을 산 사람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학생들은 불법 인강을 구매한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 불법 인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도 않는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인강 판매자들이 철저하게 지인을 활용한 영업을 하는 데다 신고자도 없어 적발하기 어렵다”고 했다.

불법 인강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저작권법에 의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저작물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져야 한다.

◆학원들, 불법녹화 방지에 골머리

불법 인강의 최대 피해자는 학원이다. 학원들은 불법 인강 판매를 적발하기 위해 고시생 커뮤니티에 ‘인강 삽니다’와 같은 글을 주기적으로 올리는 식으로 ‘함정’을 파기도 한다. 하지만 불법 인강 판매자들이 걸려드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학원 관계자들의 얘기다. 판매자들이 구매 문의 전화를 받으면 누구 소개로 연락했는지부터 확인하고 판매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업력이 오래된 판매자들은 공개된 게시판을 통해 구매자를 모집하지 않는다”며 “고시반 학생들을 통해서만 알음알음 연락할 수 있도록 주도면밀하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학원들은 불법 인강을 막기 위한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다. 녹화 소프트웨어 실행이 감지되면 인강이 강제로 종료되게 하는 기술은 이미 예전에 도입했다. 요즘엔 녹화 방지를 전문 보안업체에 맡기고 있다. 모니터 신호를 중간에서 가로채 녹화할 수 있는 장치인 ‘캡처보드’를 사용하는 등 녹화 기술이 갈수록 발달하고 있어서다.

신림동 한 고시학원 관계자는 “불법 강의 공유 모니터링에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지만 불법 녹화를 완벽하게 막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