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자살"→의문사위·1심 "타살"→2심 "자살"→대법 "불분명"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인 '허원근 일병 사건'의 부모가 아들의 사인을 정확히 밝혀달라며 대법원에 재심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32년 전 허 일병의 죽음이 타살인지 자살인지는 다시 '미제'로 남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허 일병 부모가 지난해 대법원이 "사인이 불분명하다"고 결론 낸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다시 재판해달라며 제기한 재심청구를 29일 기각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 부모는 증거들이 조작됐다는 이유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이는 사실인정에 관한 것들이어서 (법리를 따지는) 대법원 상고심의 재심 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의문사위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2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고 손해배상액도 3억원으로 감액했다.

2심은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다.

허 일병의 사인을 둘러싼 공방은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사건 당시 군 수사 기관의 부실 조사로 현시점에서 허 일병의 타살·자살 여부를 명확하게 결론 내릴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31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대법원은 군의 부실 조사로 유족이 받은 고통에 대한 위자료 3억원 만을 인정했다.

아들의 사인 규명을 애타게 기다렸던 허 일병의 부모는 대법원이 모호한 태도로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하며 지난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끝내 진실에 한 발도 더 다가서지 못했다.

이날 재심청구가 기각된 뒤 유족과 의문사유가족대책위원회 등 단체들은 "대법원이 또다시 진실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bang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