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련,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 LG그룹이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 전경련은 1961년 설립된 지 55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 전경련,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 LG그룹이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 전경련은 1961년 설립된 지 55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LG그룹이 탈퇴 방침을 공식화하면서다. 1961년 설립돼 ‘재계 맏형’을 자처한 지 55년 만이다. 전경련은 박근혜 정부의 요구에 따라 주요 기업에서 774억원을 거둬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수금창구’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LG 등 4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회원사가 잇따라 탈퇴 준비에 나서면서 전경련은 쇄신안을 내놓기도 전에 와해 위기에 내몰렸다.

◆4대 그룹 탈퇴 움직임 본격화

[해체 수순 밟는 전경련] 4대 그룹 '탈퇴 도미노'…'재계 맏형' 전경련 영욕의 55년 저문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전경련 ‘해체’보다 ‘쇄신’에 무게를 뒀다. 구 회장은 당시 “전경련을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전환하고 각 기업 간 친목단체 정도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LG그룹 내부에서 전경련 쇄신안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면서 아예 발을 빼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전경련이 정권을 위한 수금창구로 전락하면서 활동 자체를 크게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LG그룹이 전경련에 올해 말 탈퇴한다는 입장을 공식 전달하면서 인연을 끊은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LG와 전경련의 오랜 앙금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1999년 ‘반도체 빅딜’ 때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가는 과정에 전경련이 영향력을 행사한 뒤 구본무 회장은 전경련에 발길을 끊었다.

LG그룹의 탈퇴 공식화에 따른 후폭풍은 거셀 전망이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4대 그룹의 탈퇴 움직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미 청문회에서 전경련 탈퇴 의사를 분명히 했다.

삼성 측은 전경련에 “당장 탈퇴 절차를 밟지는 않겠지만 내년 2월 총회에서 결정되는 회비는 내지 않겠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도 “이미 탈퇴 의사를 공식 천명한 만큼 내년부터 회비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아직 명확한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전경련에서 발을 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전경련 간판 내리나

4대 그룹의 탈퇴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전경련이 와해 수순을 밟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주요 그룹이 발을 빼면 전경련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져서다.

전경련의 작년 예산은 임직원 급여 등으로 쓴 218억원(일반회계)과 외부단체 지원금 등 274억원(사회협력회계)을 합쳐 총 492억원에 달했다. 전경련 회관 임대료를 받아 건축 비용을 갚는 데 쓰는 특별회계(312억원)는 제외한 금액이다. 500억원에 육박하는 실질적인 전경련 예산 대부분은 600여개 회원사가 내는 회비로 충당한다. 이 중 60%가량은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부담한다. 이들 그룹이 빠지면 전경련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연간 100억원 넘는 예산을 주요 회원사의 회비로 충당해온 한국경제연구원도 마찬가지다.

4대 그룹이 빠지면 다른 주요 그룹의 ‘도미노 탈퇴’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 10대 그룹 임원은 “삼성 등 4대 그룹이 전경련 회비를 내지 않는데, 어느 기업이 돈을 내겠느냐”고 했다.

KT도 이날 전경련에 탈퇴 의사를 공식 전달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도 일제히 전경련 탈퇴 절차를 밟고 있다.

재계에서는 전경련이 어쩔 수 없이 ‘간판’을 내리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쇄신 대상인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전경련의 쇄신안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회원사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일단 기존 틀을 허물고 난 뒤 쇄신이든 변신이든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장창민/노경목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