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전후 '비합리적 거래' 집중 조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비위 의혹을 파헤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두 회사 합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민연금관리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주식 매매 과정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작년 7월 양사 합병을 전후로 국민연금의 주식 매매에 관여한 연금 직원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등 업무 관련자들도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국민연금은 청와대 입김에 휘둘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키고자 시장 논리에 어긋나는 주식 매매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사실로 확인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제삼자 뇌물수수 혐의를 뒷받침할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검팀은 전날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에 관여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그에게는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다.

업무상 배임 수사는 합병 찬성 결정으로 국민연금에 손실을 초래한 정황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검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을 사고판 정황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식 매매 패턴이 수익 극대화라는 시장 논리 관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작년 5월 합병 결정 공시에서 합병 비율을 1대 0.35(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로 밝혔다.

이는 제일모직 주주에게 유리했지만, 삼성물산 주주에게는 불리한 것으로 평가됐다.

삼성물산 주주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 결정에 반기를 든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적정 합병 비율이 1 대 0.95는 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은 시장 논리로 선뜻 이해하기 힘든 매매 행태를 보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양사 합병 결정 발표 이후 삼성물산 주식을 지속해서 매입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같은 해 6월 한 달 동안 9.92%에서 11.61%로 빠르게 늘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하는 동안 삼성물산 주가는 제일모직의 0.35배를 웃돌았다.

합병 비율을 기준으로 보면 삼성물산이 고평가된 것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팔고 제일모직 주식을 사야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당시 증시에서는 삼성물산 주식을 공매도하고 제일모직 주식을 매입하는 차익거래가 활발했다.

국민연금이 시장 흐름을 거스르는 매매 패턴을 보인 것이다.

국민연금이 차익을 포기하면서 삼성물산 지분을 늘린 것은 그해 7월 합병 결정을 하는 삼성물산 주주총회를 앞두고 의결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주총에서 엘리엇을 필두로 한 합병 반대 세력을 꺾고자 손실을 무릅쓰고 삼성물산 지분을 확대했다는 주장이다.

합병 찬성 세력은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강화에 총력을 쏟았다.

삼성그룹은 임원부터 사원까지 나서 소액주주를 찾아다니며 의결권을 위임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은 주식 매매가 부분적으로는 자산운용사 등에 위탁 방식으로 이뤄지고 이들이 재량권을 갖는다는 점을 들며 의혹을 부인했다.

특검팀은 국민연금 위탁운용에 참가한 자산운용 관계자 등이 국민연금의 '지침'에 따라 움직였을 가능성에도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인 홍순탁 회계사는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에도 모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또한 특검팀이 규명해야 할 의혹"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이보배 기자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