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역사·역사교육 학자 및 대학원생 1천579명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 역사·역사교육 학자와 대학원생들은 26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중단하고 국회도 국정교과서 금지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날 오후 6시까지 전국 164개 대학과 164개 역사 관련 학회(단체) 소속 역사·역사교육 학자와 대학원생 1천579명이 성명에 동참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일"이라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자신들만의 정파적 필요에 따라 국정교과서를 추진했고, 이는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정 농단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장 검토본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하지 않은 조건에서 졸속으로 작업돼 교육현장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수준 미달"이라며 "이같이 부당한 절차와 방법으로 만들어진 부실한 내용의 역사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성명 낭독에 앞서 역사학자들은 국정 역사교과서 검토본을 분석한 결과도 발표했다.

근현대사 서술을 분석한 김성보 연세대 교수는 "현대사가 국민주권을 부정하고 독재정부를 미화해 반헌법적이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해 지면을 한쪽만 할당하는 등 친일의 역사를 특정 소수의 일탈로 치부했고, 박정희 등의 친일 행적은 삭제돼 있다"며 "한국 경제 성장의 공은 거의 전적으로 박정희라는 지도자 1인 또는 재벌에게 있고 국민·시민은 단지 수동적인 존재로만 묘사되는데 이는 지도자를 강조하는 북한 교과서와 다를 바 없는 서술 체계"라고 비판했다.

또 "5·16 쿠데타의 명분으로 사회적 혼란과 장면 정부의 무능, 공산화 위협 등을 내세우며 막상 그 쿠데타가 헌정 유린이었음은 밝히지 않고 있다"며 "유신체제도 '유신체제의 등장과 중화학공업의 육성'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억압적 통치가 경제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음을 내비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양섭 고려대 교수도 "전근대 부분은 명백한 오류나 부정확한 내용, 이미 통용되지 않는 오래된 학설 등이 여과 없이 수록돼 있다"며 "관점이나 사관의 문제를 떠나 필자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서술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kamja@yna.co.kr